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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 이순원

등록 2016-02-19 18:40수정 2016-02-19 18:40

대관령 아래에 있는 내 고향 마을은 요즘도 설을 쇠는 모습이 조선시대 한중간이나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유교 전통마을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마을 촌장님을 모시고 사는 동네다. 설날에는 집집마다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하고, 그다음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촌장님에게 합동 세배를 드리고, 마을 사람들끼리 새해 인사를 나눈다. 이것을 온 마을이 함께 절한다는 뜻으로 ‘도배례’(都拜禮)라고 한다.

마을에서 제일 나이 든 연장자가 촌장 어른으로 추대되는데, 마을 일을 결정하는 데 실질적인 권한은 없어도 마을을 대표하고 마을의 단결과 화목을 이끄는 구심적 역할을 한다. 마을 풍습이 이렇다 보니 명절에 한번 내려가면 자기 부모형제만 만나고 오는 것이 아니라, 고향에 계신 어른들과 또 대처에 나가 있다가 명절에 고향에 돌아온 사람들을 모두 만나고 오는 것이다. 고향 얘기뿐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인심을 듣고 오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런 풍습은 근래에 들어 어느 날 생긴 것이 아니다. 마을에는 43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대동계가 옛모습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조선 중기에 시작된 향약의 전통이 한국 유가마을의 전통 그대로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마을회관뿐 아니라 온 마을의 집집마다 거실 한쪽 벽에 마을에서 나누어준 ‘향약 4대 덕목을 잘 실천하자’ 하는 표어가 가훈처럼 붙어 있거나 걸려 있다. 좋은 일은 서로 권하여 장려하고(덕업상권), 행실 나쁜 짓은 하지 못하게 규제하고(과실상규), 마을 사람들끼리 예의를 지키고(예속상교), 어려운 일이 생길 때에는 서로 돕자(환난상휼)는 뜻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 모두 형제처럼 가족처럼 가깝게 지낸다. 바깥 다른 동네에서 동네 사람들 간에 다툼이나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소문이 들릴 때마다 우리 마을만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안으로 더욱 결속하는 힘을 보여준다.

어떻게 이런 전통이 430년이나 이어져 오게 되었을까. 집집마다의 관혼상제를 마을 공동의 일로 치른 데서부터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가정마다 가장 큰 일이 자식의 혼례와 돌아가신 부모님의 장례인데 그런 큰일을 치르는 데 마을 사람들이 함께 힘을 합하고, 또 거기에 필요한 가마와 혼례복과 상여와 차일(천막)과 또 많은 손님을 겪어내는 데 필요한 상과 그릇을 마을의 공동재산으로 구입하고 함께 관리해왔던 것이다.

지금은 혼사가 있으면 예식장에서 모든 손님을 한꺼번에 감당하고, 장례 때도 장례식장에서 모두 감당하지만 예전에 이것을 집집마다 감당할 수 있게 마을 공동재산으로 동네 그릇이 있었던 것이다. 내 어린 시절에도 동네 그릇과 동네 가마와 동네 상여와 동네 차일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것들은 모두 없어지고, 아주 오래도록 유지되어온 대동계와 촌장제만 남은 셈이다. 올해 도배례가 끝난 다음 동네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음식상을 펼칠 때 여든쯤 된 노인회 총무 어른께서 일흔쯤 된 연하의 노인에게 “젊은 사람이 음식을 나르지 않고 무얼 하느냐?”고 장난삼아 나무라는 소리를 들었다. 명절에 객지에서 다니러 오는 가족들은 있어도 마을을 지키는 일흔살 아래의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순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마을 사람들끼리 한가족처럼 화합하는 아름다운 전통이기는 하지만, 이 전통은 또 어느 시기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매년 설에 고향에 가 도배례에 참가할 때마다 긴 그림자를 남기고 서산으로 넘어가는 겨울 저녁해를 보는 듯한 마음이다.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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