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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푸거의 여유 제퍼슨의 저주 / 최우성

등록 2016-02-23 19:40수정 2016-02-24 08:17

최우성 논설위원
최우성 논설위원
미국 건국의 주역인 알렉산더 해밀턴과 토머스 제퍼슨은 서로 말도 섞지 않는 사이로 유명했다. 특히 금융을 바라보는 시선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금융업이 번성한 뉴욕 출신의 해밀턴을 겨냥한 듯, 제퍼슨은 “은행은 외국 군대보다 더 위험한 존재”라는 악담을 서슴지 않았다.

국가와 은행은 인류 역사 속 양대 ‘화폐세력’이다. 돈을 찍어낼 권한을 누가 쥐느냐가 핵심이었다. 균형추는 점차 은행 쪽으로 기울었다. 정부의 방만한 씀씀이가 늘 화근이었다. 200여년간 유럽의 돈줄을 쥐락펴락한 푸거 가문이 “왕은 군림하고 은행은 지배한다”를 가훈으로 삼았을 정도다. 영국과 미국의 근대 금융사는 더욱 적나라하다. 부를 거머쥔 금융업자들은 금을 모아 궁핍한 정부에 꿔주는 대가로 은행권을 마음대로 찍을 수 있는 민간은행 설립을 요구했다. 독점적 발권력을 지닌 중앙은행의 출생 비밀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뿌리내린 현재의 금융시스템은 국가와 은행의 ‘동거체제’라 할 만하다. 국가에 의한 통화 남발을 막고자 중앙은행이라는 독립기관이 발권력을 행사하게끔 하는 방식이다. 흔히 나라가 돈을 찍는다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해 착각이다. 정책의 관점에서 중앙은행도 넓은 의미의 정부 부문으로 보는 게 옳겠으나, 국가는 중앙은행이 발행한 돈을 이자를 물고 빌려 쓰는 형식상 채무자 신세다.

최근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계기로 이른바 ‘비전통적’ 통화정책 이야기가 넘쳐난다. 일본은행은 기업과 가계 대출을 늘리도록 시중은행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아예 보관료 카드를 꺼내 들었다. ‘돈이 돈을 낳는다’는 오랜 속설을 뒤집었다는 뜻에서 비전통적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그런데 비전통적 카드마저 먹혀들지 않는다. 왜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현행 금융시스템이 임계치에 다가섰다는 점도 빼놓아선 안 될 듯하다. 시중 통화량 가운데 중앙은행이 공급한 돈(본원통화)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금융기관을 거치며 수수께끼처럼 ‘창조된 돈’(신용)이다. 실체가 없으나 누군가는 되갚아야 하므로, 이를 ‘부채 화폐’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중요한 건 이처럼 ‘부채 덕에’ 굴러가는 시스템에선 고질적인 구매력 부족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이다. 특히 국가채무에 짓눌린 정부는 슬그머니 가계에 부담을 떠넘기기 십상이다. 채무자의 얼굴이 국가에서 가계로 바뀔 뿐, 부채경제라는 덫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기는 마찬가지다. 재정지출 축소→가계부채 증가→구매력 저하→경기둔화 지속의 악순환은 경제가 어려울 때일수록 더 익숙한 풍경이다.

오죽하면 상상 속의 묘수쯤으로 꼽히던 ‘헬리콥터 머니’가 현실의 대안으로 고개를 들고 있을까.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사람들 손에 직접 안겨주자는 얘기다. 정부로선 국가부채의 부담을 덜고 경기를 화끈하게 끌어올릴 수 있다. 한마디로 부채경제로부터의 일시적 도피다.

“그들(은행)은 먼저 통화 팽창을 활용하고, 다음엔 통화 긴축으로 국민의 재산을 강탈할 것이다.” 제퍼슨의 악담엔 곱씹어볼 만한 구석도 있다. 어차피 현행 금융시스템에서는 팽창과 수축을 왕복하는 돈의 진자 운동 안에서 부채의 고통만 늘려갈 뿐이라는 불편한 진실. 전통이냐 비전통이냐의 고민은 어쩌면 사치인지도 모른다. 눈앞의 세상은 이참에 발권력의 본질, 중앙은행(업)의 존재 이유, 그리고 국가-은행의 동거체제에 근본적 물음을 던져봐야 할 만큼 위기의 골이 깊게 파였기에.

최우성 논설위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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