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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빅데이터는 진실할까 / 최우성

등록 2016-03-03 20:25수정 2016-03-03 20:32

“잠시 피로 검문이 있겠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막아 세워 막대 모양의 센서를 신체 부위에 갖다 대니 피로도가 재깍 표시돼 나타난다. 텔레비전 광고 속 한 장면이다. 인간이 느끼는 주관적 심리상태인 피로를 계량화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1884년 이탈리아 토리노대학의 연구실에선 안젤로 모소란 이름의 학자가 독특한 모양의 기구를 선보였다. 나무탁자 위에 금속 장갑이 고정돼 있고 장갑에 연결된 쇠줄엔 금속 추가 아래로 매달렸다. 장갑에 손을 집어넣은 뒤 금속 추의 무게를 점차 늘려가면 쇠줄이 손가락을 좀 더 세게 잡아당기는 구조다. 금속 추와 근육운동 사이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함수가 모소의 ‘피로곡선’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 사회는 새로운 사회문제에 맞닥뜨렸다. 대규모 공장노동자 집단이 공통으로 겪는 육체적·정신적 피로와 산업재해, 질병 등이 대표적이다. 계층 간 싸움의 열기도 후끈 달아올랐다. 눈에 띄는 대목은 국가나 자본 주도의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유독 물리학·생리학·통계학 등 자연과학 분야가 적극 활용됐다는 점이다. 새로운 사회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19세기 후반의 공통된 현상이다. 피가 난무하고 살이 맞부딪치는 현실의 첨예한 갈등은 이제 무미건조한 수치의 비교라는 형식을 빌려 ‘객관성’의 영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말하자면 인간의 세상이 데이터의 세상으로 재해석됐다고나 할까.

바야흐로 빅데이터 전성시대다. 정보처리 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따라 단지 다루는 데이터의 양만 늘어난 게 아니라, 개별 데이터 사이의 연관성을 더 종합적으로 따져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분석 결과를 계량화·시각화하는 수단도 놀라우리만큼 풍부해졌다. 자연스레 빅데이터를 정교한 사회분석의 도구로 할용하려는 발걸음도 활발하다. 정책개발이나 연구 분야 이외에 저널리즘도 빅데이터의 매력에 푹 빠져들고 있다. 어느새 빅데이터는 마법의 도구로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

물론 비판받을 대목도 적지 않다. 빅데이터의 상품성에 먼저 눈뜬 건 이를 새로운 이윤창출의 기회로 삼으려는 거대기업들이다. 공공 영역에서 축적된 방대한 분량의 통계자료뿐 아니라 기업활동에서 얻은 여러 정보들도 거대기업들에 의해 ‘가치 있는’ 빅데이터로 재탄생하곤 한다. 빅데이터를 일러 차세대 핵심 생산수단이라 일컫는 이유다. 게다가 응당 공공재여야 할 데이터를 사적 이익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마치 옛날부터 내려오던 마을의 공유 목초지에 하루아침에 테두리를 쳐버린 인클로저 운동의 21세기 버전에 가깝다. 이뿐 아니다. 감시사회의 유혹을 벗어던지기 힘든 국가권력한테 빅데이터란 최고의 카드임에 틀림없다. 사회 전체로 봐선 무시무시한 재앙의 출발점이고.

최우성 논설위원
최우성 논설위원
하지만 빅데이터 전성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건 빅데이터의 신화부터 한꺼풀 벗겨내려는 자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데이터란 결코 객관적이지도 중립적이지도 않다. 수집·가공·활용하는 주체와 그 대상 사이의 현실 세력관계를 반영할 뿐 아니라, 숫자라는 상징물 속에 정작 사람과 사람, 계층과 계층이 관계 맺는 삶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릴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맥락(사회)을 제거한 기호 덩어리! 피로도를 나타내는 수치가 곧장 공장노동이라는 냉혹한 사회제도의 해법이 될 수 없었듯이, 빅데이터 역시 21세기의 절대진리도 만병통치약도 아니다. 제아무리 데이터값이 크다 한들, 현실은 언제나 데이터 ‘바깥’에 존재한다. 진실한 빅데이터는 없다.

최우성 논설위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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