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세력, 정당의 입장에서 선거란 무엇일까? 선거란 대중의 삶을 관통하는 감각과 생각을 포착하고, 거기에 부합하는 시대정신을 제시함으로써 대중의 마음을 얻는 정치적 의례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세력들의 비전과 가치들은 서로 경합하고, 대중의 선택과 만나고 엇갈린다. 그리고 때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다. 4·13 총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경선과 공천 과정에서 잡음이 난무한데 정당들이 어떤 시대정신으로 대중의 마음을 읽고 얻으려 하는지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깜깜이 선거다.
약간의 비례대표를 제외하면 지역대표를 뽑는 게 총선이라 지역의제에 관심이 쏠리는 건 인지상정이다. 대선과 달리 시대정신이 부각되지 못하는 나름의 이유다. 게다가 여당 쪽은 굳이 새로운 의제를 내세울 이유가 없다. 어차피 이길 가능성이 높은 선거라고 볼 텐데 판을 깔아줄 이유가 없다. 야권은 다르다. 구조적 열세, 위기상황이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통해 판을 흔들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분열한 야권은 각자도생 모양새다. 시대정신이 사라진 자리에 정치공학만 나부낀다. 그 결과는 기득세력의 확대재생산이고, 서민의 고통 지속일 것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변화의 열망이 뜨거웠다. 복지국가가 시대정신으로 떠올랐다. 2012년 새해 사회정책 전문가 31명을 대상으로 한겨레가 실시한 조사 결과다. 그해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공정과 정의, 평등으로 응답했고,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와 복지 의제를 과감하게 끌어안았다. 51.6%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다. 2007년과 2008년, 대선과 총선의 시대정신은 성공이었다. 이명박 후보가 물 만난 고기처럼 선거를 치를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시대 대중의 삶을 관통하는 감각과 의식은 무엇일까? ‘불안’이다. 삶 전체를 옥죄는 총체적이며 전방위적인 불안. 불안의 기저에는 경제위기에 대한 실감이 있다. 한국갤럽의 신년조사에 의하면 올해 한국 경제 상황이 지난해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응답이 52.2%였다. “올해 우리 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와 비슷한 위기일 것이라는 주장”에 58.6%가 공감했다는 결과도 있다.(미디어리서치 신년조사) 불안은 과거와 비교해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가 2040세대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67.4%가 자신의 삶이 불안하다고 응답했다. 4년 전에는 58%였다.
불안도 불평등하다. 경제적 지위, 학력 등 자신을 지켜낼 자원이 적은 집단을 집중적으로 위협한다. 같은 30대지만 빈곤층은 96%가 불안감을 느낀다. 중상층 이상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은 13%에 불과하다. 40대도 다르지 않다. 빈곤층은 90%가 불안을 토로한 반면, 중상층 이상에서는 9.5%만 불안하다.
안보불안(73.9%)보다 경제불안(94.7%)과 외교불안(76%)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보수성향층일수록 불안이 공포를 자극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생존본능에 충실하게 된다. 새로운 불안으로 기존의 불안을 틀어막는 박근혜 정부의 ‘불안의 정치화’ 전략은 이런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거나 말거나 안보불안으로 경제불안을 틀어막는다는 전략의 효과는 변변찮다.
4·13 총선은 세월호 참사 2주기 즈음에 치러진다. 이 사건 이후 국가가 불안을 막아주기는커녕 불안의 근원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퍼졌다. 이 불안의 시대에 각 정치세력은 어떤 시대정신으로 응답할 것인가?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 hgy4215@hani.co.kr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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