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딴 건 다 봐줄 수 있는데 전교조랑 민주노총! 걔네들은 봐줄 수가 없어요.” 능숙하게 차선을 바꾸면서 그가 말했다. 결연한 음성이었다. 나는 백미러를 살짝 건너다보았다. 희끗희끗한 곱슬머리 밑으로 보이는 회백색 눈썹이 한번 크게 오르내리더니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이 나라가 없었으면 전교조니 그런 게 있을 수 있었겠어? 나라가 있어야 데모를 하든 뭘 하든 할 거 아니야, 안 그래요?” 갑자기 백미러로 그의 두 눈이 쑤욱 올라왔다. 나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다가 “아, 예…”라는 애매한 의성어를 내보냈다.
라디오에서 총선 얘기만 나오지 않았어도 그와 나는 그의 손주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곱게 헤어졌을 것이다. 총선 얘기가 나오자 그는 유승민 얘기를 꺼내더니 이내 박정희 대통령 얘기로 옮아갔다. 요지는 ‘지금 이 나라를 있게 해주신 분이니 욕되게 하면 안 된다’는 것. 그러고는 바로 전교조와 민주노총을 입에 올렸다. 나는 ‘악질 종북단체들이 설쳐서 위험해진 나라’에 대한 그의 열렬한 성토에 애매한 의성어로 답하며 버티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기사님, 전교조가 뭐 하는 사람들인데요?” 그가 멈칫하며 머리를 긁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아주 질 나쁜 놈들이지. 북한 지령을 받고 선동질하는 놈들이잖아, 그것들이.” 이전에 비해 확연히 작아진, 그러나 여전히 울분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나는 그게 아니라고 내가 열심히 말하는 장면을 잠깐 떠올려보다가, 이내 그 장면을 떨쳐냈다. 동일한 상황에서 일어났던 전례들, 그러니까 내가 주먹 불끈 쥐고 반론을 펼치고, 기사분이 노기등등한 목소리로 받아치는 수순이 수차례 반복되다가 서로 얼굴 붉힌 채 인사도 없이 하차했던 기억들이 우르르 몰려왔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는 전교조와 민주노총이라는, 나를 자꾸 말하고 싶게 만드는 두 단어를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제 그는 ‘법’에 대한 신념을 토로했다. 자신은 정말 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며 살면서 저지른 범법은 교통위반 딱지를 두 번 뗀 것이 전부라는 이야기가 유려하게 흘러나왔다. 나는 머릿속에서 끈질기게 펼쳐지는 ‘전교조에 대한 변론’이 내 입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면서 그가 풀어놓는 인생 이야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목적지가 다가왔을 때쯤, 하던 말을 멈추고 그가 불쑥 물었다. “원래 알고 있었어요?” 백미러로 다시 그의 두 눈이 올라왔다. “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이 아저씨가… 내 마음을 다 읽은 건가? “전교조가 그런 덴지 원래 알고 있었어요? 아니면 오늘 내가 손님 역사공부 좀 시켜준 건가?” 이렇게 말하면서 그가 웃었다. 눈가에 수십 개의 주름이 생겨나면서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어내는 근사한 웃음이었다. 나는 그 웃음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아, 예…” 하고 애매한 의성어를 내보냈다. 목적지에 도착해 준비했던 돈을 내밀자, 그가 그중 일부를 돌려주며 말했다. “사거리에서 너무 막혔잖아. 그 돈 다 받으면 내가 양심이 찔려서 안 되지.” 그제야 볼 수 있었던 그의 얼굴 전면에 다시 한 번 화사한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나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인 그의 검버섯 핀 얼굴을 망연자실 쳐다보다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 후 며칠 동안 그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에게 전교조가 북한의 지령을 따르는 단체가 아니라고 열변을 토하는 내 모습을 떨쳐내지 못했다.
정아은 소설가
정아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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