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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탈북종업원에게도 인권이 있다 / 김보근

등록 2016-04-10 19:40수정 2016-04-12 09:09

집단탈북 뒤 지난 7일 입국한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13명’은 남한에서의 처음 며칠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탈북이라는 운명을 건 모험을 감행한 뒤 남쪽 공항에 첫발을 딛게 된다면 안도의 표정을 짓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첫 남녘살이는 그런 편안한 마음으로 출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남쪽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통일부가 긴급 기자회견을 한 탓이다. 더욱이 기자회견 내용은 집단탈북 종업원들의 신분 정보가 자세히 담긴 것이었다. 북한의 해외 식당은 모두 130여개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중 한 곳에서 13명이 함께 탈북했다는 것을 통일부가 공개했다. 북한 당국이 그들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운 일일 것이다. 만일 집단탈북 종업원들이 통일부의 기자회견 사실을 알았다면 북에 남은 가족 걱정에 편히 잠을 자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아직까지 통일부의 기자회견 사실을 모를 수 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어떤 은밀한 장소로 이송됐다. 이후 국정원 등이 주도하는 ‘합동신문조사’를 받고 있을 것이다. 합동신문조사팀은 조사의 효율성을 위해 통일부의 기자회견 사실을 그들에게 일체 알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합동신문조사를 받고 나온 뒤 기자회견이 그렇게 전격적으로 진행됐다는 것을 알면 그들은 또 얼마나 큰 배신감을 느낄 것인가. 아마도 ‘새로운 고향’이라고 믿고 찾아온 남쪽의 정부가 자신들 등에 비수를 꽂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새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찾아왔지만, 남한 정부에 의해 배신당하고 버림받았다’는 한탄으로 세월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모든 일은 정권의 ‘정치적 이익’을 탈북자 ‘개인의 인권’보다 중요시한 탓에 일어났다. 물론 이렇게 정치이익을 위해 탈북자 인권을 침해한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6월15일 중동부 전선을 통해 북한군 병사가 귀순했을 때에는 국방부가 그 병사의 정보를 언론에 ‘줄줄’ 흘렸다. 당시 언론은 이 사건에 대해 ‘1박 귀순’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국방부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국방부의 정보를 그대로 받아쓰면서 비판은 간데없고 흥미만 남았다. 당시 그가 전방이 아닌 함흥에서 200여㎞를 걸어왔다는 사실과 함께, 심지어 ‘군대 내 보직은 누구누구의 운전병이었다’는 점까지 자세히 소개됐다. 이에 따라 그냥 전방에서 귀순했다고만 했으면 드러나지 않았을 신분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됐고, 이 병사 역시 북에 남은 가족 걱정으로 많은 번민의 날들을 지내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집단탈북 종업원에 대한 ‘통일부의 기자회견’은 당시와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통일부가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탈북자 보호 및 정착지원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부서이기 때문이다. 특히 법은 제4조 기본원칙에서 “대한민국은 보호 대상자를 인도주의에 입각하여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통일부의 이번 긴급 기자회견은 이런 법의 취지를 명백히 어긴 것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어떤 정부이건 자신들이 이루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 또 여러 수단을 동원해 이를 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기자회견처럼 탈북자 인권이라는 법의 기본원칙마저 무시할 때, 사람들은 이를 ‘또 하나의 북풍’이라고 부를 것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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