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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세월호의 진실에 투표합시다 / 김이택

등록 2016-04-12 20:28수정 2016-04-12 20:28

“죄송합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객석에선 납덩이 같은 침묵이 흘렀지만 그것은 소리 없는 오열.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부모들 앞에서 할 수 있었던 건 참극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 그리고 <한겨레>가 지면을 통해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다짐뿐. 그로부터 1년 ‘잊지 않겠습니다’ 연재는 이어졌지만, 그로부터 다시 1년, 망각의 유혹은 우리를 휘감고 있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안산 정부합동분향소 입구엔 ‘저 하늘의 별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믿습니다 특별조사위원회!’라고 붙어 있다. ‘진실’이라도 건져보려는 마지막 절규다. 희생자들은 영정 속에서 ‘우리가 왜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떠나야 했는지 말해보라’고 꾸짖고 있다. 한 조문객이 남기고 간 메모는 ‘널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용서하지 말아라’며 분노를 가득 품고 있다.

분향소 밖 유가족 대기실은 그대로였지만 그 곁에 내걸린 현수막은 모두 실종자들의 사연으로 바뀌었다. 팽목항으로 내려가면서 은화 엄마는 딸에게 ‘곧 만나러 간다’고 편지를 썼다. 모녀의 사진 옆엔 ‘세상 모든 사람이 잊어도 엄마니까 포기 못 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아들아 이제 그만 집에 가자’는 현철이 아버지의 호소도 가슴 저리다.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길, 가족협의회가 내건 현수막 하나가 눈길을 잡아끈다. ‘한 사람의 죽음에서도 그 나라를 본다’.

그렇다. 그날 이후 벌어진 일은 이 ‘나라’의 민낯이다. 2014년 4월16일 아침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 사고해역 수온은 12.6도,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떠 있었다면 6시간은 버틸 수 있었다. 근처엔 50여척의 어선까지 대기 중이었으니 충분히 살려낼 수 있었다. 방대한 자료를 분석한 <한겨레> 정은주 기자와 ‘진실의 힘 세월호기록팀’의 결론이다.

그러나 청와대 안보실은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구조에 전념하라”는 말 대신 대통령 보고서에 넣을 한 줄에 집착했다. 특히 영상까지 보내라는 바람에 배 안에 뛰어들어 승객을 구조해야 할 해경은 배 밖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지휘부에 보고하는 데 골몰했다. 그 시간대 해경 본청 핫라인에 기록된 청와대의 영상요구 전화만 10통이 넘었다. 세월호 선원들 역시 ‘구조’보다는 제 몸 하나 빠져나오기 바빴다.

그 뒤 유병언 일가가 국민적 분노의 제물로 바쳐지고 ‘해경 해체’ 시늉에 이어 123정장과 선장·선원들만 재판에 넘겨졌다. 살려낼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청와대와 해경 고위층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수백명 생명 구조보다 대통령 보고를 앞세웠던 ‘나라’는 그대로다. 유족들과의 ‘특검’ 약속조차 깨버린 대통령은 ‘악어의 눈물’ 세리머니 이후엔 세월호의 ‘세’ 자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 1주기에 출국했다는 비난을 피하려 팽목항을 잠깐 찾은 것 빼고는 얼씬거린 ‘흔적’조차 없다. 그러니 ‘7시간’ 비밀을 지키려 ‘진박’들이 조사특위를 반쪽으로 만들고 청문회를 국회 밖으로 내쫓은 건 당연한 수순. 세월호를 구하지 못한 군주 리더십은 눈 밖에 난 원내대표를 찍어내고 어명을 감히 거스른 박물관장까지 쫓아내며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오늘은 투표일. 유족을 모욕하고 진실규명 협약 제안조차 걷어찬 후보들이 당선권이고, 여당은 과반 의석을 훌쩍 넘긴단다.

김이택 논설위원
김이택 논설위원
지난 주말 서울 시내 행진 대열이 치켜든 구호는 ‘세월호의 진실에 투표합시다’. 불과 2년 만에 세월호를 잊는다면 별이 되어 내려다보고 있을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겠는가.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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