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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선희의 밑줄 긋기] 음서제의 나라

등록 2016-04-14 20:03

총선의 소란스러움이 잦아들고 나면 사회적 주목이 쏠릴 법한 두 사안이 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부정입학 의혹과 대입 학생부종합전형의 ‘금수저 입시’ 논란이다.

불투명한 입학과정에 대한 비판은 로스쿨이 2009년 개원한 이후 끊이지 않았지만, 지난해 ‘사법시험 존치’ 공방과 맞물려 강도를 더해 갔다. 지난달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로스쿨 교수를 위한 로스쿨> 발간과 언론 인터뷰는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신 교수는 저서에서 “○○○ 변호사 아들이 이번에 우리 법전원(로스쿨)에 원서를 냈는데 꼭 합격시켜야 한다며 동료 교수 연구실을 찾아다니는 교수(가 있다)”라고 썼다. 이 학생의 면접 때 한 교수는 직접 아버지의 이름을 묻기도 했다고 한다. 경찰은 지난 4일 수사에 착수했다.

이 사례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닐 거라는 정황이 많다. 신 교수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자기소개서에 많은 학생들-특히 법조인 가정 아이들-이 부모 직업을 밝힌다. 대다수 교수들은 법조인 자녀에 대해 호감을 갖는다”고 말했다. “대형 로펌의 대표변호사인 한 학부모는 나한테 전화해서 ‘우리 애가 입학하도록 해주면, 나중에 졸업할 적에 (경북대 졸업생) 몇 명을 같이 취업시켜 주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입시철에는 일을 못할 정도로 ‘사회지도층’으로부터 전화를 많이 받는다”는 다른 교수의 인터뷰도 나왔다.

부정입학 의혹과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최근 대입의 대세가 되고 있는 학생부종합전형(수시의 한 형태로, 교과성적과 함께 봉사·동아리·진로탐구·독서 등 비교과활동을 반영)이 모든 계층의 학생들에게 공정한 제도인가 하는 논란도 커지는 중이다. <한겨레>의 관련 보도(‘학생부의 배신-불평등 입시 보고서’ 시리즈) 뒤 교육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지난 7일 ‘학생부의 배신, 진실인가, 오해인가’ 토론회를 열었다. 국민의당은 총선 공약으로 아예 ‘수시모집 축소’를 내걸고, “20대 국회가 시작되면 국민적 공론화를 통해 입시제도 개선안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7일 토론회에서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전했다. “언제부터인가 전국의 고등학생들로부터 많은 이메일을 받는다. ‘한번만 만나주세요.’ ‘꼭 뵙고 싶습니다.’ 아마 생활기록부에 진로탐색과 관련해 한줄이라도 쓰려는 의도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이메일에 흔쾌히 답을 해주고 만나줄 교수가 몇명이나 될까. 그러면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는 학생은 과연 누구일까. 결국 (부모의) 인맥을 동원해서 소개를 받고 추천을 받은 몇몇 학생들뿐일 것이다.”

많은 사회에서 교육은 계층이동의 주요 통로다. 교육의 기회가 자신의 노력과 능력이 아닌 부모의 지위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사실은 평범한 집안의 청년들에게 깊은 좌절감을 안길 것이다. 로스쿨과 학생부종합전형은 애초 사법시험의 폐해, 성적에 따른 한줄 세우기 교육의 부작용을 극복하려는 의도로 추진됐던 제도들이다. 하지만 이 제도들이 현실 속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으며 뒤틀리고 있다면 하루빨리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럼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이냐”고 목소리만 높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안선희 사회정책팀장
안선희 사회정책팀장
교육부가 지난 12월~1월 실시한 전국 25개 로스쿨 입시과정 전수조사 결과를 이달 말에 발표한다. “조사 결과가 충격적이어서 교육부가 발표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돈다. ‘현대판 음서제’(고려·조선 시대, 고관의 자식이 과거를 보지 않고도 관리로 채용되던 제도) 논란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는 점을 교육부도 잘 알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안선희 사회정책팀장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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