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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맥주보이’ 다시 돌아오게 됐지만… / 안재승

등록 2016-04-21 19:47수정 2016-04-21 21:47

잠시나마 야구장에서 사라졌던 ‘맥주보이’가 다시 돌아오게 됐다. 야구장에서 생맥주 이동판매를 금지한 정부가 비판 여론에 밀려 열흘 만에 이를 철회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국세청은 야구장을 돌아다니면서 생맥주를 파는 것은 식품위생법과 주세법에 어긋난다는 판단을 내리고 11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이를 전달했다. 또 야구장에선 신분증 확인이 쉽지 않아 청소년들이 술을 살 수 있다는 우려도 이유로 들었다. 잠실·사직·수원구장은 곧바로 맥주보이 영업을 중단했고, 다른 구장들도 중단하기로 했다.

야구팬들의 항의는 당연지사였다. 갑자기 내려진 황당한 조처에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미국이나 일본의 야구장에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데 왜 우리만 팬들의 즐거움을 빼앗느냐는 불만이 들끓었다. 야구나 맥주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현실을 무시한 지나친 규제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쓸데없는 규제를 만들어 일자리를 줄이고 소비를 위축시켜 가뜩이나 안 좋은 경제를 더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었다. 결국 식약처와 국세청은 21일 “재검토해보니 현행법상 맥주보이의 영업이 가능하다”는 어정쩡한 입장을 밝히며 백기를 들었다.

국세청은 최근 과태료까지 부과한 ‘와인 택배’도 제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소비자가 직접 주류 매장에 찾아가 와인을 산 경우 택배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기로 한 것이다. 또 동네 치킨집에서 치킨과 함께 맥주를 배달하는 ‘치맥 배달’도 단속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다만 청소년 확인과 위생 확보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한 보완 장치는 따로 마련하기로 했다.

이번에 논란이 된 일련의 사안들은 경제 규제와 관련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무엇보다 국민 생명이나 환경 파괴, 경제력 집중 같은 몇몇 예외적인 문제들을 제외하고는 사전 규제를 가급적 줄이고 대신 사후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쪽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점이다. 정부가 자꾸 이건 해도 되고 저건 해선 안 된다는 식으로 간여를 하면 민간의 창의성을 억누르게 되고 혁신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은 경제·사회 구조 전반이 오프라인에서 벗어나 디지털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기존의 주력산업들은 한계에 봉착했고 새 성장동력을 시급히 찾아내야 할 때다. 신속한 결정과 대응이 필요하다. 이런 변화된 상황에서 사전 규제는 물리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할 뿐 아니라 효과는커녕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 또 기득권 세력의 보호막이 돼 스타트업(신생 벤처)과 중소·중견기업들에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면서 우리 경제의 활로 찾기를 방해할 수 있다.

대신 사후 규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자율성을 확대해주되 그에 걸맞게 책임을 지게 하고 잘못이 드러나면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강화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가해자가 고의적으로 불법행위를 했을 때 피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한 것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다. 지금은 하도급법상 대기업의 기술 탈취와 부당 단가인하, 발주 취소 및 반품에만 적용되고 있는데 이를 불공정행위 전체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마침 4·13 총선에서 여야 가릴 것 없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강화를 공약으로 내놨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안재승 논설위원
안재승 논설위원
사전 규제를 가급적 줄이는 대신 사후 규제는 대폭 강화하는 것, ‘경제 활성화’와 ‘경제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안재승 논설위원 js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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