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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조선산업 구조조정, 10년 전의 예고 / 강신준

등록 2016-05-02 19:14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04년 민주노총 산하 금속연맹(2006년 산별노조 전환)은 국회에서 정책연구사업 발표회를 개최하였다. ‘조선산업의 발전전망과 노동조합의 대응방향’이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에는 세 가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첫째, 2000년대 이후 조선산업의 수요는 정체되는 데 반해 공급은 계속 확대되어 수급 불일치에 따른 구조적인 위기가 2010년을 전후하여 도래할 것이라는 점, 둘째, 우리의 경쟁국 가운데 유럽, 일본은 이미 이런 위기를 예상하고 범국가 차원의 대응전략을 수립하고 있다는 점, 셋째, 우리도 이에 대응하여 범국가적인 위기 대응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이었다. 당시 조선산업은 호황을 지속하고 있었지만 산업의 특성상 구조적인 위기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고 보고서는 “아직 날이 맑을 때 우산을 준비하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이해당사자들의 행태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2002년 연구사업을 발주한 노동조합은 최대 사업장인 현대중공업이 2003년 금속연맹에서 탈퇴함으로써 조직적인 분열에 휘말린데다 임기가 2년밖에 되지 않는 집행부의 고질적인 조건 때문에 아무런 대응책도 준비하지 못하였다. 자본 쪽은 재벌 경영의 병폐를 그대로 보여주면서 대마불사에 대한 정부의 뒷배만 믿고 당장의 호황에 매몰되어 위기는 물론 공동대응에 대해서도 귀를 닫고 각개약진의 길만 고집하였다. 정부는 한술 더 떠 위기의 대응책을 준비하기는커녕 눈앞의 호황에 현혹되어 거꾸로 경남 지역에 대규모 조선단지를 건설하여 공급을 확대함으로써 구조적인 위기를 더욱 키우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보고서가 지적한 위기는 2008년 금융위기의 돌발사태와 함께 예측된 시기보다 조금 일찍 찾아왔다. 경쟁 국가 가운데 위기를 준비하지 않았던 중국과 우리나라는 직격탄을 맞았고 대응책을 준비한 유럽(‘리더십 2015’)과 일본(‘일본 조선산업의 비전과 발전전략’)은 피해를 훨씬 적게 받았다. 우산을 준비한 나라와 준비하지 않은 나라의 극명한 대비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위기가 닥쳐온 이후에도 우리 조선산업은 기존의 안이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조선산업의 특성상 기존의 발주물량을 당분간 이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물량마저 동이 나면서 드디어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지금에야 비로소 위기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그나마도 총선 이후 내년도 대선을 의식한 정치권이 중심이 되어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에 갑작스레 부산한 움직임들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갑자기 이런다고 이미 내리고 있는 비를 피할 수는 없다. 준비해두지 않은 우산이 갑자기 생겨날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당장의 비를 피하려 허둥대기보다 다음번에 닥쳐올 비를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단기적인 응급처방보다는 장기적인 처방에 주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처방의 기본적인 방향은 위의 보고서에 이미 담겨 있다. 노동조합이 먼저 업종 차원의 연대를 구축하고, 정부를 끌어들여 초기업적 교섭을 통해 산업경쟁력, 노동시장, 숙련체계, 고용안전망 등의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다행히 현대중공업에 민주집행부가 들어섬으로써 연대를 위한 조건은 이제 마련되어 있다. 10년이 넘도록 무책임한 행태로 일관한 정부와 자본이 갑자기 장기적인 대응의 지혜를 발휘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위기를 미리 예측한 우리 노동조합만이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 우리 민주노조운동의 견인차 구실을 했던 조선업종 노동조합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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