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개성공단근로자협의회 회원이 정부에 피해 보상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발표하던 날, 통일부 장관이 우리한테 ‘걱정 말라, 입주기업 대책 다 세워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매주 한 번씩 대책을 다섯 차례 발표했어요. 대체 생산지를 마련해 주겠다, 근로자들을 해고하지 않고 계속 고용하면 지원금을 주겠다, 공공 물량 입찰 때 가산점을 주겠다 등등… 그런데 말만 요란뻑적했지 그림의 떡이더라고요. 실효성 있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개성공단입주기업 비상대책위원회의 한 위원)
“개성공단 입주기업 근로자들이 약 2000명 됩니다. 현재 그중 80%가량이 직장을 잃고 동종 업종에서 알바로 일하거나 아니면 막노동을 하고 있어요. 그도 안 되면 그냥 대책 없이 쉬고 있죠. 정부의 일방적 결정으로 공단이 폐쇄됐으니, 정부가 근로자들을 해고한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런데도 근로자들에 대한 정부 지원은 사실상 없어요. 1인 시위도 하고 삭발도 했는데, 계란으로 바위 치기입니다.”(신윤순 개성공단근로자협의회 공동위원장)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100일이 다 돼 간다. 공장을 잃은 기업인이나 일터가 사라진 노동자들 모두 지난 시간이 “전쟁 같은 날들이었다”며 몸서리를 친다.
박근혜 대통령은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발표 엿새 뒤인 2월16일 국회 국정연설에서 “정부는 입주기업들의 투자를 보전하고, 빠른 시일 내 경영을 정상화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나갈 것이다. 남북경협기금의 보험을 활용해 개성공단에 투자한 금액의 90%까지 신속하게 지급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당시 정부는 입주기업들에 가동 중단 결정을 불과 두세 시간 전에 통보했다. 입주기업들은 기계설비는 물론 완제품과 원·부자재를 거의 그대로 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고, 그 탓에 피해 규모가 커졌다. 박 대통령의 지원 발언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입주기업들은 이중으로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게 거의 없는데도 피해의 대부분을 보상받은 줄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공단 폐쇄에도 기업을 계속 유지하려면 거래처를 잃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납품 기일을 맞춰야 했고 대체 생산시설과 원·부자재가 필요했는데, 정부는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만 내놨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정부는 입주기업이 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고용을 유지하면 기존 고용보험의 고용유지지원금(월 129만원)에다 남북협력기금에서 6개월 동안 월 65만원씩 지원하기로 했다. 금액이 너무 작아 생계에 별 보탬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80%의 실직 노동자들은 대상에서 아예 제외된다. 많은 노동자 가정이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무책임한 정부의 태도에 분노한 기업인과 노동자들이 최근 법적 대응을 시작했다. 개성공단입주기업 비상대책위원회는 9일 “정부가 법적 근거 없이 공단 폐쇄를 결정해 재산권이 침해됐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노동자들도 “물질적·정신적 피해에 대해 월급의 12개월치를 위자료로 지급하라”며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입주기업과 노동자들을 위한 최선의 대책은 개성공단의 재가동이지만, 남북한 당국의 경직된 태도를 볼 때 당분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정부는 이제라도 피해 보상에 적극 나서야 한다. 입주기업과 노동자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억울한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짓이다.
안재승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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