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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 대통령, 세일즈 외교의 세일즈는 이제 그만

등록 2016-05-11 19:30수정 2016-05-12 17:18

[김종구 칼럼]
대통령의 국외 방문 때마다 언론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세일즈 외교’(sales diplomacy)란 말은 사실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영어다. 국제적으로는 경제외교(economic diplomacy)라는 보편적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구글에서 ‘sales diplomacy’로 검색을 해봐도 온통 한국 대통령들 이야기만 나온다. 다른 나라 정상들은 하지 않는 독특한 외교를 우리 대통령들만 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말을 애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 국익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에서 세일즈 외교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김영삼 정부 때부터다. 이 용어는 전임자의 ‘북방 외교’에 대응해 만들어진 성격이 짙다. 한-중 수교, 한-소 수교 등 굵직한 현안들이 모두 해결돼 외교가 빛을 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통령의 정상외교 앞에 붙일 수식어를 찾다가 생각해낸 게 세일즈 외교다. 대통령이 마치 세일즈맨처럼 각국을 누비고 있다는 이미지를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데는 그만이었다.

그 뒤 정부들도 모두 이 표현을 즐겨 사용했는데, 특히 심했던 것은 이명박 정부다. 심지어 ‘실용적 세일즈 외교’라는 말까지 했다. 세일즈라는 것 자체가 실용적인 것이고, ‘이념적 세일즈 외교’라는 말이 성립할 수 없는데도 그런 어이없는 말을 자랑스럽게 사용했다.

세일즈 외교(sales diplomacy)라는 말은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영어다. 구글에서 sales diplomacy를 넣어 검색해보면 온통 한국 대통령들 이야기만 나온다.
세일즈 외교(sales diplomacy)라는 말은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영어다. 구글에서 sales diplomacy를 넣어 검색해보면 온통 한국 대통령들 이야기만 나온다.

이미지를 노린 언어는 허상으로 가득 차 있기 마련이다. 세일즈 외교의 허상은 재계 인사들이 대통령의 정상회담 수행 경제사절단 참여를 꺼리는 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대통령을 따라 외국에 나가면 회사에 큰 이득이 굴러들어 온다는데 따라가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 이유는 자명하다. 대기업의 한 고위 임원은 “실속이 없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나라 밖으로 나갈 때마다 청와대와 재계 사이에는 경제사절단 참여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가 벌어진다. 전직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외교안보수석실로는 안 되기 때문에 경제수석실, 심지어 민정수석실까지 나서서 경제사절단에 참여하라는 압력을 가한다”고 말했다. 재계가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은 예전보다 요즘이 훨씬 더 심하다고 한다. 국내 5대 재벌 기업의 한 고위 임원은 “대통령 순방에 따라가지 않았다가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른다는 분위기”라면서 “서로 눈치를 보면서 누구를 보낼까 고민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방문 뒤 나온 ‘52조원 수주’ 등 현란한 뉴스의 이면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제제재 조처 해제 이후 경제 재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란이 한국 기업들한테 요구해온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자신들은 돈이 없으니 한국 쪽에서 파이낸싱을 책임져 달라, 이란 현지기업과 합작 형태로 사업을 진행하라, 기술이전을 확실히 해달라는 것이다. 이런 조건만 충족된다면 얼마든지 한국에 사업권을 넘겨주고 수의계약까지 가능하다는 게 이란의 태도였다. 그중에서도 최대의 관건은 파이낸싱이다.

실제로 이번에 이란 쪽과 양해각서(MOU)를 많이 체결한 비밀의 열쇠는 우리 정부가 이란 사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대폭 늘리기로 약속한 데 있다. 국책은행이 해외 프로젝트 자금을 대는 것은 리스크도 적지 않은데다 국내 구조조정 등으로 인한 자금부담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이란에 간다고 하니 정부 기관들이 손놓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등에서 이란 사업에 대한 금융지원 한도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말하자면 수주 비결은 ‘외교’에 있다기보다는 ‘국내 금융정책’에 있는 셈이다. 이란 쪽에서 “한국이 이란 인프라 프로젝트에 250억달라 상당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반색하고 나선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이런 측면을 은근슬쩍 감춘 채 마치 박 대통령이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 수주를 따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일종의 사기극이다.

한국과 이란이 교역규모를 3배로 늘리기로 합의했다고 자랑하는 것도 쓴웃음을 짓게 한다. 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란을 방문했을 때 두 나라는 교역규모를 10년 안에 11배 늘리기로 합의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외교 협상력은 시진핑 주석에 비해 11분의 3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인가. 정상들끼리의 립서비스성 합의를 두고 자화자찬을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뜻이다. 오는 8월께 이란을 방문할 예정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엇비슷한 성과를 거둘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이나 일본이 우리처럼 정상회의 결과를 부풀려 홍보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란 외교부 인터넷 홈페이지.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인 2013년 2월12일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북핵 핵실험과 관련해 “세계의 모든 핵무기는 폐기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란 외교부 인터넷 홈페이지.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인 2013년 2월12일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북핵 핵실험과 관련해 “세계의 모든 핵무기는 폐기돼야 한다”고 밝혔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중동 지역이나 한반도에서 어떤 핵무기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입장”이라고 밝힌 것을 두고 청와대는 눈부신 외교적 성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란의 이런 입장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인 2013년 2월12일 이란 외교부의 라민 메만파라스트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북핵 실험에 대한 코멘트를 요청받고 “세계의 모든 핵무기는 폐기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핵무기 철폐를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핵 개발은 평화적 이용 목적이라고 주장해온 이란으로서는 원칙적인 견해 표명이었지만, 당시 테헤란 주재 북한 대사는 이란 외교부를 방문해 항의의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북핵 문제에 대한 이번 정상회담 성과를 엄밀히 평가하자면 로하니 대통령의 입에서 직접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앞으로도 박 대통령의 국외 순방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당장 오는 25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에티오피아·우간다·케냐 등 아프리카 3개국과 프랑스를 국빈방문한다. 대통령에게 외국 순방은 여러가지로 기분 좋은 일이다. 골치 아픈 국내 정치를 잠시 잊어버릴 수 있고, 국익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이미지를 국민에게 줄 수 있는데다, 우아한 한복 패션을 뽐낼 절호의 기회마저 된다. 모두 좋다. 그렇지만 정상외교 결과를 제발 과대포장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아프리카에서 얼마나 ‘대박 외교’를 펼쳤다고 자랑할 것인가. 이제는 철 지난 세일즈 외교의 세일즈를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는가.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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