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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역대급 사건이 될 ‘어버이 게이트’ / 김이택

등록 2016-05-12 20:39

2011년 8월2일치 <동아일보> 31면에 대형 광고가 실렸다.

“8월24일 전면 무상급식 ‘심판의 날’ - 전면 무상급식은…세금폭탄을 안겨주는 복지 포퓰리즘입니다…당신의 소중한 한 표가 결정합니다!!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앞둔 7월24일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 박아무개씨가 우익단체 자유주의진보연합 대표에게 이메일로 지침을 내렸고, 제목도 지침 그대로 달렸다.

한진중공업으로 떠나는 희망버스를 비난하는 ‘절망버스’ 광고문안 지침도 보내고, 우익단체 명의 신문 배포와 1인시위까지 조종했다. 박씨는 이런 식으로 2년간 최소 7개 우익단체의 활동을 지휘했다.

국정원 대공수사국 소속 유아무개(닉네임 ‘좌익효수’)씨는 야당 대선후보 단일화 뒤인 2012년 12월6일 포털 ‘다음’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 ‘문죄인 인지부조화 우리가 원하던게 니가 말하던게 이런 거냐?’ ‘구태정치꾼이 되어가는구나…철수○○…너도 오늘부터 구태다.’ 단일화를 비난하는 댓글을 집중적으로 올린 반면 박근혜 후보에게는 ‘역시 개간지 나는군. 우리의 여황제님이시다’ 등 호감을 유도하는 글을 남겼다. 검찰 수사팀이 정치개입 가능성이 큰 것만 추렸더니 A4 용지로 173장이나 됐다.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팀의 윤석열 팀장 등은 2013년 10월15일 밤 이런 내용들을 정리한 보고서를 들고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집을 찾았다. 그러나 명백한 선거·정치개입 증거를 보고도 “야당 도와줄 일 있냐”며 뭉개는 태도에 실망한 윤 팀장은 이틀 뒤 독자적 판단으로 국정원 직원 체포를 감행했다. 이후 상황은 다 알려진 대로 국정감사장에서의 충돌, 그리고 윤 팀장의 좌천과 일부 검사의 사표로 끝났다.

지난달 25일 원세훈 사건 파기환송심 공판에서 검사들은 “보수단체를 이용해 시위하고…이것을 특정 보수매체를 통해 기사화하고, 이를 온라인팀 직원이 전파하는 생산·확대·재생산의 총괄적 메커니즘으로 관리한 게 국정원 심리전단”이라고 정리했다. 댓글은 빙산의 일각이고, 온·오프라인에서 우익 단체와 매체들을 총동원해 선거개입, 정치공작을 벌였다는 뜻이다.

검찰 지휘부가 국정원 박씨의 이메일을 읽어봤다면 ‘어버이연합 게이트’의 뿌리를 그때 간파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댓글사건을 축소하려 안달했고, ‘좌익효수’의 댓글은 아예 10개로 대폭 줄여 사실상 무죄를 유도했다. 직무유기의 범죄행위다.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청와대 정무수석실 허현준 선임행정관과의 접촉 사실을 시인하며 “이 시민단체들 다 걔 손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말했다. 청와대 행정관이 자원봉사하는 자리도 아니니 당연히 정무수석과 그 윗선까지 보고됐을 것이다. 전경련이나 대기업을 움직이는 데 청와대의 힘도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국정원 박씨한테 이메일 지침을 받은 대한국인애국청년단 단장은 “돈이 필요해서” 그런 일을 했다고 밝혔다. 이상돈씨는 이런 일이 “이명박 때부터 있었다”고 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보수정권 아래서 시민단체와 언론을 가장한 우익들, 그리고 익명의 온라인 전사를 활용한 ‘21세기형 공작정치’ 메커니즘, 즉 권력 핵심과 교감하는 정치검찰과 청와대-국정원을 잇는 커넥션이 비밀리에 작동해왔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

김이택 논설위원
김이택 논설위원
국정원뿐 아니라 청와대, 검찰에도 교도소 담장 위를 위태롭게 서성이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 것 같다. ‘어버이 게이트’가 터지면 역대급이 될 것이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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