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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오랜 친구를 보내며 / 이순원

등록 2016-05-13 21:27


너를 만난 지 15년이 되었다. 사람 세상에서 사람들 간의 교류라면 그것은 그다지 긴 시간이 아니다. 나에게는 사귄 지 100년도 넘는 친구가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 100년의 계산을 하면 이렇다. 그 친구는 내가 처음 그 친구를 만난 게 아니다. 살아 계시면 125세 되는 할아버지께서 열다섯 살 무렵 친구의 할아버지를 처음 만나 두 분이 오래 남다르게 우정을 나누었다. 그러나 아들딸을 낳는 시기가 서로 달라 그 친구의 할아버지는 첫아이로 아들을 낳았고, 할아버지는 몇 자식을 잃은 끝에 아들을 낳아 두 아들의 나이 차이가 아홉 살이나 되었다.

요즘 같으면 그 정도 나이 차이면 감히 벗을 하자고 하거나 하라고 할 수가 없다. 학교에도 선후배가 있고 군대에도 선후배가 있고 사회 어느 곳을 가더라도 선후배가 있다. 그러나 두 분 할아버지는 자신들의 우정이 너무 각별하여 두 아들을 벗하게 했다. 이게 말처럼 쉽지 않은 게 아직 코를 흘리는 열 살짜리 아이와 곧 혼인을 해도 될 열아홉 살짜리 청년을 벗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벗이라고 서로 말을 막 내리고 쉽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 집안 간의 우정을 이어갔다.

그런 두 아버지가 또 저마다 여러 남매를 낳은 중에 나하고 그 친구의 나이가 같아 어린 시절부터 친구가 되었다. 할아버지들이 단오장에 놀러 가실 때나 계모임에 가실 때면 나는 우리 할아버지 지팡이를 들고(이걸 지팡이를 모신다고 한다) 따라다니고 그 친구는 또 자기 할아버지의 지팡이를 들고 따라다녔다.

그러면서 늘 들은 얘기가 너희들은 지금 너희끼리 처음 만난 것이 아니라 너희보다 먼저 아버지들이 만났고, 그 위에 할아버지들이 만나 너희가 처음 만난 때를 계산하더라도 할아버지들이 처음 만나 벗한 때로부터 계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걸 집안 간의 세의라고 한다. 할아버지들은 돌아가시고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 그 친구가 아이를 결혼시킬 때에 두 집안의 이 긴 얘기를 하며 내가 내 아이를 결혼시키듯 주례를 섰다.

어쩌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그런 그 친구와의 우정과 인연보다는 짧지만, 나는 사람으로 너는 자동차로 우리가 만나 보낸 시간이 15년이다. 기계와 사람의 만남으로는 자못 긴 시간이다. 우리 식구가 늘 너에게 안전을 의탁했다. 한 번도 사람을 가볍게라도 상하게 한 적 없고, 남의 물건이나 남의 자동차를 상하게 한 적도 없다. 우리집 운전자들이 조심스럽기도 했겠지만 네 성정 또한 얌전했다.

그런데 며칠 전 나라에서 몇 년마다 실시하는 자동차 종합검사를 받았다. 이 검사가 너의 수명의 연장검사이기도 한데 열 종류의 항목 검사 가운데 네가 뱉어내는 배기가스 중 질소산화물 항목이 기준치보다 두 배나 높게 나와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정비소에서는 큰돈을 들여 고친다고 해도 재검사에서 이 부분의 합격을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이순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참으로 많은 생각이 오갔다. 너처럼 꼭 15년을 우리집에 와서 살고 떠난 깜비라는 이름의 강아지 생각도 났다. 이제 우리가 서로 이별해야 할 시간이 온 듯한데, 어떻게 너를 폐차장의 고철무더기 속으로 버려야 할지 이 또한 사람으로 할 일이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어둡다. 예전에는 이런 일까지 오기 전 중간에 차를 바꾸어 이런 슬픔까지 몰랐다. 운전을 하지 않는 나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너를 가장 많이 운전하고 다닌 아내는 어떻게 너를 떠나보내냐며 울고 있다. 이 역시 우리 인생사의 한 이별인가 보다.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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