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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2016, 옥시 사태와 레미콘 공장 / 우석영

등록 2016-05-16 19:28



영국에 본사를 둔 어느 다국적 기업의 제품이 한국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태. 그리고 핵-경제력 병진노선 등을 선언한 북한 7차 노동당대회. 이 두 사건은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인다. 우리의 뇌가 이 두 뉴스를 처리하는 방식도 범주화 방식을 따라서, 사회 뉴스와 북한 뉴스로 각기 분리하여 이해한다. 그러나 이 나라가 지금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제대로 조망하려면, 이 둘 사이의 점선을 우리는 생각해봐야만 한다.

전후 한국의 산업발전은 한마디로 고삐 풀린 자본주의 체제 내의 산업발전이었다. 그 고삐 풀림을 주조한 요소에는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의 영향력, 자유주의로 돌아선 세계경제 질서로의 편입도 있겠지만, 그 근간에는 남북 분단체제와 전쟁 경험이 있다. 한반도 남쪽에서의 산업발전은 일종의 ‘후속 전쟁’의 성격을 갖는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발전이기 이전에 설욕전이었다. 우선은 북에 질 수 없었고, 스스로의 욕됨 역시 이 세계에서 최대한 신속히 지워야 했다. 이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되자,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스스로를 세계에 내보이겠다는 새로운 설욕전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그 설욕이 탐닉과 동일한 것이라는 차이가 있었지만. ‘선진국’이라는 가치가 작금의 한국에서 절대가치가 된 서글픈 스토리이자 이유다. 또한 이러한 정신성과 더불어 발전했기에 전후 한국 자본주의는 태생부터 광기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대체 무엇이 광기란 말인가? 얼마 전 나는 경북 경주시 외동읍 근방의 처가에 가 있었다. 대대로 농촌지역인 이 근방은 외동, 문산, 석계 일반산업단지 개발이 허가된 후, 공장 시설이 산야를 잠식하고, 외국인 노동자가 신라의 고토에 출몰하는 진풍경을 보여 왔다. 구판장이나 있을 법한 산마을 깊숙한 곳까지 미국 텍사스주에 본사를 둔 편의점이 들어섰고, 읍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거주할 원룸 빌딩이 신축되었다. 그러나 진풍경 중 진풍경은 잠식의 풍경이다. 산 아래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식이 아니라 산을 전부 밀어버리고 거기에 ‘공장 산’을 만드는 식이기 때문이다.

더 기가 막힌 일은, 어느 레미콘 기업과 관련된다. 공장을 짓고 공장 노동자들의 살림집을 건설하는 데는 시멘트가 긴요하다. 문제는 산업단지를 대상으로 시멘트를 팔려는 한 업체가 논 바로 옆에 레미콘 공장을 세운 것이다. 장소도 문제이지만, 지역 농민들에게 이 일을 일언반구 고지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문제다. 가장 큰 문제는 지방정부가 그 레미콘 공장의 설립을 허가했다는 것이다.

지난 5월7일 나는 수 미터의 석축 위에 세워진 수십 미터 레미콘 골리앗을 치어다보며 어안이 벙벙한 채로, 그 괴물과 연접한 논에 거름을 뿌렸다. 공장이 가동되기 시작하면, 그리하여 납, 카드뮴, 니켈 등이 주변 토양·수생생태계를 오염시키면 어찌 될지 모를 가엾은 농지이지만, 그래도 모르니, 그럼에도 아니 뿌릴 수 없으니, 뿌렸다. 그러나 거름과 중금속을 함께 먹고 자랄 그 벼의 알곡은, 공장에서 나올 비산먼지와 분진은 어느 누구의 입으로 들어갈 것인가?

우석영 철학자
우석영 철학자
기업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쯤은 무방하다는 식의 옥시, 김앤장의 정신성과 쌀보다는 시멘트가 더 중요하다는 식의 저 공장 설립에 관한 법률 제13조의 정신성. 이 둘은 그닥 다른 것이 아니다. 공장 산을 세우면서도 지역발전 운운하는 정신성도, 성장동력을 마련하기만 한다면 그 무엇도 희생 가능하다는 식의 정신성도 다른 유가 아니다. 그토록 이 나라가 도달하려는 선진국들은 이미 다른 삶의 모델로 회향한 마당에, 대체 어디로 더 가자는 말인가.

우석영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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