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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혁웅의 오목렌즈]다가올 죽음 앞에서

등록 2016-05-22 19:40

권혁웅 시인
권혁웅 시인
‘임을 위한 행진곡’, 얼핏 들으면 노랫말이 꽤 허술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사랑이 없다면 저 결심은 너무 메마른 것 아닌가? 명예와 이름을 남기지 않겠다는 건 같은 말 같은데? 한평생 나가자던 맹세를 놔두고 동지는 어디로 간 거지? 동지가 없는데 흔들리지 말자는 권유는 누구한테 하는 걸까? 깨어난다는 건 무슨 뜻이지, 잠을 잤던 건가? 그렇게 의아해하다가 문득 깨닫는다. 그날, 1980년 5월27일 새벽 2시, 2만5천명의 계엄군이 쳐들어왔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저들은 사랑하는 이와의 미래를 포기했고 “폭도”라 불리는 불명예도 감수했다. 어쩌면 행불자가 되어 이름도 잃게 될 것이었다. 이미 많은 동지가 죽었고 죽어가고 있었으며 죽게 될 것이었다. 깨어 있는 곧 살아 있는 이들이여, 저 죽음을 향해 나아가자. 이 노래는 우리를 임박한 죽음 앞에 데려다 놓는다. 처절하고 숭고한 죽음이다. 그러니 이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이들을 이해하자. 그들은 이편에 속하지 않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에서 이 노래가 불리지 않게 하자.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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