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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혁웅의 오목렌즈]이 죄를 다 어쩌나

등록 2016-05-24 19:30

권혁웅 시인
권혁웅 시인
어떤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정확히는 할 수 없는 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인 경우가 있다. 이번 강남역에서 벌어진 한 여성의 참혹한 죽음도 그런 일이다. 남자로 태어나서 미안하고 부끄럽다. 이 죄를 다 어쩌나 싶다. 여성이 이런 잔인한 범죄의 표적이 되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 대한 증오를 통해 자신의 약함을 가리려는 이 속물근성은 거의 원죄 수준이다. “마누라”와 “북어”를 동일시하는 속담에서 “고추”를 새끼줄에 매달아두던 풍습에 이르기까지 여성을 차별하고 멸시해온 전통은 그야말로 유구하다. 그런데 인류학자들은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전쟁이 나서 남자들의 씨가 말라도 여자들만 있으면 인구는 금세 회복된다. 폭증하는 인구를 제어하기 위해서 여성들의 수를 조절할 필요가 있었으며, 이것이 남자를 중시하는 역설적인 풍조를 낳았다는 것이다. 남아선호란 남자들의 상대적인 무가치함 덕분에 성립된 풍조이며, 실제로는 여아살해의 다른 이름이다. 추모집회를 여는 침통하고 공포에 질린 사람들 옆에서 반대시위를 벌이는 남자들을 보았다. 내게는 그들이 화장실에서 몰래 숨어 있던, 그러다가 여자들의 꽁무니를 끝내 따라붙는 남자들의 자의식으로 보였다.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자신들의 존재를 알아봐달라는 안간힘으로 보였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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