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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세로드립 / 김하수

등록 2016-06-05 19:34

언어의 기능을 교과서적으로 이야기하면, 정보와 사상을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줄여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과서 안의 지식보다 바깥 지식이 더 많듯이, 언어도 교과서 바깥의 기능이 더 많다. 예를 들어 말장난, 남을 놀리거나 약 올리기, 거룩한 대상에 대한 희롱이나 조롱 같은 것들은 언어의 또 다른 다양한 역할이다.

점잖은 작가들은 언어로 사랑과 비애, 순정과 분노를 적절히 걸러내며 그들의 ‘작품’을 만든다. 반대로 세속의 보통사람들은 언어로 온갖 장난을 치며 살아간다. 진지함보다는 가벼움으로, 감정의 승화보다는 배설을 선호한다. 이른바 속세의 말장난들이다. 대중이 생산한 통속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에 유행했던 ‘덩달이 시리즈’라든지 ‘만득이 시리즈’ 또는 요즘도 간간이 하고 있는 ‘삼행시’ 같은 것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뜻하지 않게 요즈음 ‘세로드립’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등장했다. 가로로 쓴 문장들의 첫 번 음절들을 세로로도 읽을 수 있게 메시지를 이중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가로로 던지는 사연은 긍정적인 것으로, 세로로 말하는 내용은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것으로 엮음으로써 상호모순적이고도 양가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고도의 문학 정신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 속에서 끓어오르는 비아냥, 조소 등을 잘 드러내 준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이런 작품이 점잖은 공모전에 당선되어 웃음거리가 되고 이러한 언어유희를 놓고 송사까지 벌어지는 모양이다. 희롱당한 측의 노여움은 백분 이해되나 유희나 개그를 대상으로 재판을 벌인다는 것은 더 큰 조롱을 불러들이는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한다. 차라리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그와 같은 찬양 문학의 공모전이 과연 지금의 시대정신에 부합하기는 했는지를 되묻는 것이 가장 슬기로운 길이 아닌가 한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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