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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글과 자전거와 세상의 안전 / 이순원

등록 2016-06-10 18:41수정 2016-06-10 20:14

나는 자전거를 거의 타지 않는다. 내가 하는 운동은 주로 걷는 것이다. 그래서 몇 년 전 대관령 정상에서부터 동쪽으로 경포대와 주문진, 또 정동진까지 걸어가는 트레킹 코스 강릉바우길을 탐사하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때 집이 너무 멀어 자전거를 타고 다닌 적도 있지만, 지금은 자전거 타기로 운동을 대신하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 조심스럽다. 예순이 된 나이와 또 보통사람들보다 확실히 둔한 내 운동감각과 내 실력으로 자전거를 타서 얻을 수 있는 운동효과보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 넘어지거나 위급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해 다칠 수 있는 위험요소가 더 크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내 책상 앞에 제법 모양이 예쁜 자전거 모형 하나가 매달려 있다. 햇수를 세어보니 25년쯤 내 책상 앞을 지켜왔다. 모형이 예쁘기도 하지만, 단순히 모형이 예뻐서만 걸어놓은 게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글과 자전거의 관계 때문이다. 글과 자전거가 무슨 관계가 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깨끗하게 쓸어놓은 시골마을 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타본 적이 있다. 넓은 운동장에 자전거를 타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페달을 밟고 간 다음 내가 지나온 자리를 뒤돌아보면 모래땅에 자전거 두 바퀴 자리만 남아 있다. 그렇다면 그 넓은 운동장에서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자전거가 지나가는 동안 필요한 땅은 실제적으로 두 바퀴 자리뿐이라는 얘기다.

두 바퀴가 지나갈 자리만 있으면 자전거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갈 수 있다. 지나온 결과만 놓고 본다면 그보다 더 위험천만하게 천길 만길 낭떠러지 위에 두 바퀴만 지나갈 수 있게 두 줄을 띄운 다리 위에서라고 해서 못 탈 게 없다.

그러나 세상일이 어디 그런가. 이것을 실제로 넓은 강 위의 다리로 생각해보자. 너비가 5㎞쯤 되는 넓고 깊은 강 위에 폭이 50㎝쯤 되는 난간도 없는 다리를 놓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라고 하면 아마 사이클 선수들도 중간에 모두 빠져버리고 말 것이다. 지나온 다음 뒤돌아보면 자전거는 단지 두 바퀴가 지나갈 수 있는 공간만 필요한데도 말이다.

이 다리의 폭을 1m로 넓히면 50㎝일 때보다 조금 더 안전해질 것이고, 5m, 10m로 넓히면 눈감고 지나도 될 만큼 안전하고, 또 속도감도 그만큼 더 낼 수 있고, 중간중간 핸들을 놓고 타거나 앞바퀴를 들고 타는, 또는 공중회전 같은 묘기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쓰는 글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자전거를 잘 타기 위한 충분한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충분한 연습을 했다 하더라도 폭이 좁은 다리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위험하다. 내가 쓰는 글의 바닥을 탄탄하게 다지고 넓히는 것. 그것이 바로 그 글의 소재와 주제와 또 세상과 우리 인생에 대한 충분한 공부가 아니겠는가. 글감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더 많은 자료를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 글의 자전거가 지나갈 다리를 넓게 놓는 것이다. 책상 앞에 걸어놓은 모형 자전거가 나에게 늘 그걸 묻고 있다.

이순원 소설가
이순원 소설가
그런데 이것이 어디 책상 위에서만의 일이랴. 글 말고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바닥은 넓고 탄탄한가? 충분한 준비를 마쳤는가.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 이 일을 하는가. 우리의 목숨을 지키는 세상의 안전망이라는 것들도 그렇다. 요즘 일어나는 각종 사건 사고들을 보면 우리는 난간도 없는 너무 좁은 다리 위에서 자전거 타기를 강요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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