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뒤 한 심리학자가 박근혜 대통령이 “총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해 자기 권력, 후기 구도에 집착”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는 기사(김태형 <프레시안> 인터뷰)를 봤다. “두려움이 많고 불안감이 큰 유형이라 세상에 방어막을 치고” 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간의 여러 심리분석과도 일맥상통한다.
‘신공항’ 논란에도 사과를 끝까지 거부하는 걸 보면 역시 이런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통령이 협치할 자세가 안 돼 있으면 ‘정치’ 자체가 소모적 정쟁으로 흐를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3당 체제의 국회 대표연설이 모처럼 정쟁 대신 정책경쟁이 됐다며 박수를 받고 있지만, 문제는 역시 대통령이다.
진행 중인 갈등 사안의 상당수가 대통령 때문에 안 풀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세월호 문제를 보자. 특별법 개정을 놓고 여야가 맞서 있는데 핵심 쟁점은 결국 대통령의 당일 행적이다. 부끄러운 짓 하느라 한눈판 게 아니라면, 대통령과 참모진 모두 사건 발생 직후 안이하게 판단하는 바람에 구조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대강의 행적이라도 솔직하게 드러내고 진심으로 사죄할 자세만 갖는다면 국회와 특조위 안팎에서 그렇게 맞부딪칠 필요도, 보는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이유도 없다.
아직도 해법을 못 찾은 누리과정 예산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공약’이라고 성역시하는 바람에 한정된 예산을 놓고 초등생 형과 유치원생 동생 몫을 놓고 싸움 붙이는 꼴이 됐다. 대통령만 ‘집착’을 버리면 여야 간, 정부-지자체 간에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예산 배분 문제일 뿐이다.
오히려 미세먼지 문제처럼 국민 건강을 위협해 대책이 시급한 사안은 ‘집착’하기는커녕 다음 정권에 떠넘겼다. 발암물질인 미세먼지를 내뿜는 경유 값, 화력발전 문제를 장기과제로 넘기면 그때까지 ‘그냥 견디라’는 말밖에 안 된다. 비겁한 책임회피다.
기업 소유주(오너)의 독단적 경영이나 잘못된 판단이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치는 것을 ‘오너 리스크’라 한다. 대통령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간다면 그것이 곧 ‘대통령 리스크’다. 북핵에 대응한답시고 개성공단을 덜컥 폐쇄한 것은 두고두고 짐이 될 것이다.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면서 위안부 문제까지 ‘불가역적’으로 일본에 양보하고, 앞으로 사드 배치 부담까지 떠안으면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1994년 6월 백악관에선 전쟁 위험을 감수하고 북한 영변 폭격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도 우리 국민은 새카맣게 몰랐다.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대통령의 잘못된 대외정책이 평화와 안전에 대한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시대 흐름과도 맞지 않고 보수언론조차 반대하던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그렇게 볼 수 있다. 국제적 평판 하락은 둘째 치고 다시 뒤집힐 가능성이 커 대통령의 ‘가족사 미화’ 욕심에 학생들만 피해를 보게 생겼다.
3당이 대표 연설에서 재벌개혁에 공감한 데서 보듯이,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 방안이라며 집착해온 ‘노동개혁’도 이젠 국회에 맡겨야 한다.
지금까지 대통령의 협치 대상은 극우에 가까웠다. 단식 중인 세월호 유가족 옆에서 폭식투쟁하는 어버이연합류의 극단적 세력을 활용하려 청와대 행정관까지 붙여주고, 민주와 종북도 구분 못 하는 박승춘류의 군사독재 잔존세력을 임기 내내 끼고 살았다. ‘말은 협치, 행동은 편가르기’식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박근혜 리스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김이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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