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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외제차와 벼룩시장 / 권보드래

등록 2016-06-24 19:25수정 2016-06-24 19:31

5년여 전 큰동생이 외제차를 산 게 시작이었나 보다. 갓 출시된 국산차를 적극 추천했지만, 당시 왕복 100㎞ 넘게 출퇴근을 하던 동생은 차만큼은 마음에 꼭 드는 걸 사고 싶다며 ‘강남 쏘나타’로 불리는 일제차를 선택했다. 1, 2년 후엔 작은동생네가 미국산 소형차를 타고 나타났다. 작은 차라 큰동생네 차만큼 눈 설지는 않았다. 그러더니 어라, 최근엔 부모님마저 차 바꿀 궁리를 하면서 외제차를 후보에 올리신다.

‘국산품 애용’이라면 부모님이 나보다 여러 층 위다. 외제라면 사치품이요 나아가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연배다. 한데 처음엔 펄쩍 뛰시더니 동생의 설득에 점점 솔깃해하시는 낌새다. 외제차나 국산차나 가격은 비슷한데다 할인율은 되레 외제차가 낫단다. 동생은 나아가 국산품에 충성해봤자 돌아오는 건 봉 취급뿐이다, 수출용과 내수용 차 다른 걸 보면 알조 아니냐며 소리를 높인다.

외제차가 부쩍 늘어나긴 했다. 벌써 150만대란다. 전체 차량 중에선 6% 남짓이지만 신차 판매 비율로선 20%가 훌쩍 넘는다니 외제차는 더 흔해지려나 보다. 하긴 지인들 중에도 외제차 가진 사람이 많다. 벤츠와 베엠베(BMW)에서부터 폴크스바겐이나 혼다에 이르기까지. 하긴 미국인들이 국산품 운운했다면 현대나 기아가 그렇게 진출하지도 못했겠지. 아아니지, 사람을 봉 취급하긴 수입차 쪽이 더하지 않은가?

보호무역주의와 자유무역주의의 전투장이 돼버린 양 마음이 어수선해진다. 외제에 대한 감출 수 없는 선망과 국산에 대한 안타까운 애정은 거의 자동화된 반응이다. 현대차가 미국에서 잘 팔리고 있다는 둥, 삼성이 애플과 나란히 경쟁하고 있다는 둥, 한국 드라마가 히트 치고 아무개 작가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둥, 그런 소식을 들으면 그 반응 기제가 먼저 작동하곤 한다. 런던 해러즈백화점의 ‘우리’ 가전제품 매장에서 거구의 백인 남성들이 땀 흘리며 판촉 중인 걸 봤을 때 속내가 어찌나 간질간질하던지.

참 엉뚱한 대표성이다. 민족국가라는 경계가 가로지르자 나머지가 온통 교란된다. 대기업이 빵집에 이어 미용업계까지 진출하리란 소문이 파다하던데. 투덜대면서도 발길은 밥 먹을 때마저 체인점을 향하니 원. 이러다간 대기업과 1인 기업만 남겠어. 대기업에 집중하는 대신 중소기업을 육성했던 대만은 또 그대로 위기라던데. 어쨌거나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휘청하리란 건 사실이잖아? 이건 마치 귀족들의 상원이 전 국민을 대표합네 했던 역사처럼 부조리하다.

대표 없는 세계는 어디 없나. 외제차 국산차 문제보다 소비 자체의 문제가 있을 텐데 그건 또 어쩌나. 냉장고·티브이·세탁기의 소유 여부를 계층 분류 기준으로 삼던 한 시절이 생각난다. 개발독재 시절에 한국을 이끌었던 중산층에의 꿈은 기실 소비에의 욕망에 다름 아니었다. 아파트에 살며 자동차 몰고 최신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인생이라면 행복하지 않을 리 없다고 믿었던 터다. 한데 2016년, 전 국민의 50%가 아파트에 살고 2.5명당 한 대의 자동차를 갖고 있는 오늘날의 초상이라니.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외제차에 둘러싸일 지경이니 나라도 차를 없애야 할까 보다. 아이들과 함께 벼룩시장에 들고 나갈 물건을 챙기다 충동적으로 뱉어보지만, 글쎄, 내 속마저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도 낡은 장난감을 닦고 철 지난 책을 정돈하다 보니 마음이 좀 가라앉긴 한다. 얘들아, 이번엔 딱 두 시간만 파는 거다. 기부함에 넣고 남은 돈으론 뭘 할까? 뭐, 새로 나온 게임? 미안하지만 그건 절대 안 돼 안 돼 안 돼.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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