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오래된 농담처럼 ‘왕따’라는 단어를 말하기까지 십수년이 걸렸다. 그녀는 중학생 때 지독한 왕따를 당했다. 3년 내내 혼자 다녔다.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고 들어오면 책상에는 아이들이 남긴 반찬, 그러니까 음식물 쓰레기가 올라와 있었다. 매일 울면서 집에 갔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언니가 담임을 찾아가 말했으나 담임은 조회 시간에 주의 한번 주고 말았다. ‘네 동생 왕따라며?’ 외려 언니가 반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약한 것을 비집고 들어가는 괴롭힘은 죄책감 하나 없이 당연해 보였다. 폭력을 꾸준히 당하자 그녀에게도 폭력 성향이 생겼다. 부모가 뒤를 받쳐줄 수 있다면 걸상을 들어 누구라도 내리찍고 싶었다. 외부로 향하지 못한 공격성은 육체의 말단인 손톱을 향했다. 하도 물어뜯어 검지에서 중지로, 중지에서 약지로 손톱에선 늘 피가 번졌다. 밤마다 자문자답의 꼬리물기가 시작됐다. 왜 나한테 그럴까, 내일 학교 가면 나아질까, 가해자 부모를 찾아가서 말할까, 차라리 자살할까…. 인생에서 일어나는 크고 힘든 사건일수록 그렇듯이 그녀는 자신이 당하는 고통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스물셋, 동사무소 헬스장에서 중학교 동창을 만났다. 10년 만에 마주친 그 동창, 시도 때도 없이 쿡쿡 찌르고 욕설을 뱉던 왕따의 가담자는 그 자리에서 사과했다. “미안하다.” 얼결에 이뤄진 재회와 사과를 그녀는 속수무책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열불이 났다. 억압된 것의 회귀. 상대는 죄책감 덜고 살자고 사과했을지 모르나 그녀는 치욕의 불구덩이에 다시 빠져들었다. 뒤늦게 대학에 진학해 시야와 관계를 넓히며 악몽에서 벗어난 그녀는 고통의 언어화 작업을 시도했고 ‘폭력과 기억’을 주제로 글을 썼다. “말로 받았던 폭력과 그들의 얼굴은 하나하나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 기억하고 있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잊지 않고 있다. 이건 내가 용서해야 지워질 폭력에 대한 기억이다.” 그녀는 나와 함께 글쓰기 공부를 한 학인이다. 자라지 못한 손톱을 부채처럼 펼쳐 보이는 그녀 앞에서 난 몹시도 부끄러웠다. 함부로 하는 사과가 자기기만인지도 모른 채 어른이 됐고, 왕따의 화살이 내 아이만은 비켜가길 바라는 학부모로 사는 내게 그녀의 증언은 엄중한 진실로 압도했다. “잊지 않겠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택한 ‘존엄의 회복’의 수순이 꼭 그와 같았다. “나는 범죄자들을 한 사람도 용서하지 않았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 누구도 용서할 생각이 없다. 이탈리아와 외국의 파시즘이 범죄였고 잘못이었음을 인정하고 (…) 그것들을 뿌리째 뽑아내지 않는 한 말이다.”(<이것이 인간인가> 270쪽) 왕따를 당한 아이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생존자가 된다는 뜻이다. 왕따 학생 자살 사건이 사회면 단골 뉴스가 된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니 섣부르게 용서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말은 존엄 회복의 노력이고 폭력 근절의 실천이다. 오늘도 손톱을 뜯으며 폭력의 독을 빼내고 있을 아이들은 어떻게 슬픔에 익사당하지 않고 ‘사건의 반복’을 사유하는 생존자가 될 수 있을까. 그녀는 두 가지를 말한다. 눈가가 젖어 있거나 교복이 망가졌거나 “티는 나는데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아이들을 살필 것. 당사자는 숨기지 말고 ‘고통 말하기’라는 우연한 시도를 누릴 것. “처음에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내 아픔의 정보를 내주었을 때 상대방도 자기 얘기를 터놓았다. 왕따나 직장 괴롭힘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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