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에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19일 오후 서울 명동에서 고양이 탈을 쓴 27살 청년이 고양이카페 홍보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얼마 전 한 독자가 항의성 메일을 보냈다. ‘당신은 사진 얘기는 안 하고 왜 꼭 신문 사설같이 주장만 하느냐? 정치권 욕하는 것은 됐으니 사진기자들 뒷얘기 좀 써라.’ 그러고 보니 이 글의 취지가 사진을 가지고 좀 찧고 까불고 놀아보자는 것인데, 언젠가부터 동료가 찍어 온 사진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솟구치는 분노를 억누를 길 없어 일방적인 내 주장만 늘어놓은 것 같다. ‘아무리 열 받아도 자제해야지… 초심을 잃지 말고… 참으면서, 즐겁게….’ 오늘도 많은 기사가 올라온다. ‘그래 열 받지 말고…. 좋아…. 음. 그런데 아들이 보직 특혜를 받았다고? 어…. 뭐? 장모님을 위로하러 갔다고? 으….’ 이 와중에 청와대 사진이 들어온다. 국가 안보가 중요한데 왜들 난리냐고 하는 장면이다. 아…. 날도 더운데 스팀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덥다. 더위? 그래 오늘은 더위 얘기로 하자.
언젠가 한 번 사진기자와 날씨와의 관계를 얘기한 적이 있다. 날씨가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뉴스인데 심지어는 더워야 하는데 왜 안 더운 거지? 반대로 추워야 하는데 왜 안 추운 거야? 혹시 이상기온 아닌가? 농작물은 괜찮은 건가? 마트에 전자제품은 잘 팔리나? 이러면서 뉴스라고 한 적 있다. 인간에게 먹고 마시고 잠자고 일하고 하는 것이 날씨와 밀접하게 얽혀 있으니 날씨도 역시 중요한 뉴스의 요소이다. 스마트폰으로 검색 한 번만 하면 지구 반대편의 날씨까지 한눈에 보는 세상인데도 신문에서 날씨 면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그러면 요즘처럼 더운 날씨는 어떻게 사진으로 표현할까? 대부분의 사람이 여름 하면 떠오르는 것, 그것을 표현하면 된다. 반대로 겨울은? 그것도 역시 다수의 기억 속에 있는 것을 꺼내서 사진으로 표현한다.
자, 먼저 여름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물, 바다, 수영장, 수박, 참외, 선풍기 등이 있는데 사진기자는 그런 것들을 소재로 쓴다. 어떻게? 주제를 드러내서 보기 좋게. 신문 사진은 일반 사진보다 주제의식이 강해 한눈에 봐도 그 사진기사의 주제가 무엇인지 명확해야 한다. 즉 사진을 보는 독자들로 하여금 다른 해석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그러다 보니 날씨와 관련한 사진도 즉각적이다. 무지하게 더운 날을 보내고 다음날도 여전히 더울 것이 예상되는 날 아침, 신문을 폈을 때 날씨 관련 사진은 대부분 물에 흠뻑 젖은 시민들(그것이 분수건 수영장이건)의 모습이다. 더운 날씨를 표현하는 데 이만한 것이 어디 있을까 싶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신문에 그런 장면들이 나간다는 것이고 더운 날에 기대할 수 있는 일상적인 장면이 된다는 점이다. 눈에 익숙해서 식상하기 시작하면 다른 소재를 찾아야 할 텐데, 신문 사진의 특성상 주제의식으로 무장된 더위를 표현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남들은 더워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한가하게 백화점에서 샌들 고르는 것을 쓸 수도 없고, 더운 날이 계속될수록 사진기자의 고민도 깊다.
시내에서 한 번쯤 봤을 풍경이다. 이 더위에도 고양이 탈을 쓴 한 청년(이 날씨에 노인네가 돈 벌자고 저거 뒤집어쓰고 일했다가는 사고 날 것이라서 주인이 안 시켰을 것이다)이 고양이카페 홍보에 한창이다. 그 앞의 행인이 휘두르는 조그만 부채 하나가 덥다고 난리다. 친구들하고 수영장 가서 놀아야 할 것 같은데 난데없는 고양이 탈이라니…. 며칠 고생해서 번 돈으로 바닷가나 수영장 놀러 가는 청춘이라면 좋으련만 생계가 달린 것이라면 딱할 것 같다. 기존의 더위 스케치와는 다르고 그림도 재밌는데 자꾸 ‘역지사지’라는 말이 떠오른다. 내가 다 더워서 쓰러질 것 같다. 아무리 식상해도 여름엔 역시 물이 최고인 것 같다.
윤운식 사진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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