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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차라리 ‘한복 패션 외교’가 낫다

등록 2016-08-03 18:12수정 2016-08-04 10:31

김종구
논설위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머리 모양과 화장은 언제나 완벽해 보인다. 이번주에 메르켈 총리는 격무 속에서도 어떻게 그런 완벽함을 유지할 수 있는지 비법을 털어놓았다.” 이런 문장으로 시작되는 독일 <슈피겔>의 온라인판 기사를 읽다가 피식 웃음이 나온 적이 있다. ‘패션 꽝’인 메르켈 총리의 헤어스타일과 화장이 완벽하다고? 기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 <아에르데>(ARD)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 도중 한 청취자로부터 “언제나 생기 넘치는 모습을 유지하는 비결이 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즐겁게 일하고, 충분히 수면을 취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뻔한 답변이 이어지다가, 실제로는 스타일리스트가 매일 한 차례나 두 차례씩 손질을 해주며, 머리 모양 유지를 위해 “관련 상품”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여성 정치인을 상대로 외모 이야기를 하는 것은 명백한 성차별이다. 그 주제는 동서양 모두 금기 사항이다. <슈피겔>이 이 기사를 쓴 것도 외모 관리에 대해 총리가 직접 입을 연 것이 매우 이례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궁금증은 독일보다 훨씬 더할 듯싶다. 헤어스타일만 해도, 우리 눈에는 잘 빗지도 않은 것 같은 메르켈 총리와는 달리 머리카락을 여러 개 핀으로 추켜올려 단정하게 고정한 올림머리를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게 보인다. 메르켈 총리는 같은 디자인의 옷을 색상만 바꿔 입는 습관으로 이른바 ‘비극의 광경’(The Spectacle of Tragedy)에 이름이 오르내리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각기 다른 색상과 디자인의 양장·한복을 갈아입고 나타난 적도 있다. 머리 스타일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언제나 화사한 모습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지, 보유한 의상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국민의 궁금증은 많지만 감히 물어보지 못한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평가 설문조사에서 한동안 외교 분야 점수가 가장 높게 나온 것도 대통령의 화려한 패션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대통령이 외국 방문길에만 오르면 언론들은 대통령의 패션·의상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며 ‘한복 외교’ ‘패션 외교’를 칭송한다. 이런 호들갑이 몹시 거슬렸는데 요즘 들어 생각이 바뀌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돌이킬 수 없는 덜컥수와 무리수를 두는 것보다는, 외국에서 패션 감각을 뽐내는 것이 외교적 기여는 없지만 그래도 큰 해는 없다는 생각에서다.

박근혜 대통령의 화려한 한복 패션. 박 대통령이 외국 방문길에 오를 때마다 언론들은 대통령의 패션·의상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며 ‘한복 외교’ ‘패션 외교’를 칭송해 왔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의 화려한 한복 패션. 박 대통령이 외국 방문길에 오를 때마다 언론들은 대통령의 패션·의상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며 ‘한복 외교’ ‘패션 외교’를 칭송해 왔다. 연합뉴스
‘위안부’ 협상이 가져온 비극적 파문을 보자. 지난해 12월28일 한국과 일본 양국 합의 이후 7개월이 넘었으나 피해자의 상처는 더 깊어지고 갈등의 파고는 높아만 간다. 며칠 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을 위한 ‘화해·치유재단’이 공식 출범했으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눈물샘은 마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그동안 피해자들을 만나 따뜻하게 손 한번 잡아주지 않았다. 가슴속에 진정 피해자들을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위안부 합의와 관련한 박 대통령의 발언 중 가장 거슬리는 대목은 “역대 정부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심지어 포기까지 했던 어려운 문제”를 자신이 해결했다고 자랑한 것이다. 그런 정도의 합의라면 역대 정부도 왜 못 했겠는가.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피해배상이 없는 합의, 피해자들이 거부하는 합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헛된 자랑이고 빗나간 자부심이다. ‘하지 않음만 못하다’는 말은 바로 위안부 합의 같은 경우를 이르는 말인데, 상황은 자꾸 ‘불가역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도 ‘불가역적 패착’이다.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감당할 능력이 못 되면 차라리 결론을 뒤로 미루고 뒷짐을 지고 있는 것이 백번 옳았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미래 정부가 제대로 다루지 못할 것’을 걱정해서인지 덜컥수를 두었다. 그리고 동북아 신냉전의 지뢰밭을 향해 되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가고 있다.

박 대통령은 2일 국무회의에서 사드 배치에 대해 “국가와 국민의 안위가 달린 문제로 바뀔 수 없는 문제”라고 또다시 선을 긋고, 사드에 대한 모든 우려를 “괴담과 유언비어”로 몰아붙였다. 위안부 문제와 마찬가지로 사드 배치는 불가역적 결정이며, ‘불가’를 외치는 사람은 ‘역적’이라는 단호한 의사 표현이다. 그러나 나라의 앞날에 해를 끼치는 쪽이 진짜 누군지는 훗날 역사를 기다릴 것도 없이 벌써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무해무득’한 패션 외교가 문득 그리워지는 이유다.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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