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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 사회] 에어컨, 종교, 이기심 / 이정렬

등록 2016-08-08 18:03수정 2016-08-11 08:57

이정렬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전 부장판사

장면 1

폭염특보와 열대야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1994년 이래 22년 만의 더위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살기 팍팍한 세상인데, 무더위는 우리의 삶을 더 힘들게 한다. 하지만 어쩌랴. 여름이니 더운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자연현상인데….

도시의 뜨거움은 단지 날씨 탓만은 아니다. 사람이 만든 물건도 한몫한다. 에어컨도 그중 하나다. 실외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한여름 더위를 더 부채질한다.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더위는 사람을 순응하게 만들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안락함 때문에 내가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생계 때문에 밖에서 일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 경제적인 이유 등등 때문에 에어컨을 둘 수 없기도 하다. 전기요금폭탄이 무서워 기껏 마련한 에어컨을 바라만 보아야 할 수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다른 이들은 시원한 에어컨의 냉기 속에서 지내는데, 그네들 때문에 더 더워야 하다니, 그리고 그 이유가 나의 빈한함 때문이라니… 화가 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비참하기도 하다.

에어컨은 참 이기적인 물건이다. 다른 사람이 고통스러워야 내가 편안해질 수 있다. 에어컨이 주는 이익에 고마워하기 전에, 내가 받고 있는 에어컨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다른 이들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장면 2

현각 스님. 미국 하버드대학을 나온 ‘푸른 눈의 수행자’로 일컬어진다. 이 현각 스님이 한국 불교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한국 불교는 돈만 밝히는 기복불교’라고 말이다. 기복신앙이 어찌 불교에만 있으랴. 개신교, 천주교 등등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의 저변에 기복신앙이 깔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기복신앙. 복을 기원함을 목적으로 믿는 신앙이다. 신앙의 대상 내지는 그의 뜻을 추구하는 것보다 자신의 만사형통, 소원 성취와 입신양명, 무병장수와 자손 번영 등 자신과 그 주변의 이익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 초보적이고 현세적인 신앙 행태를 가리킨다. 자기 자신과 그 주위의 이익을 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것을 추구한다 해서 딱히 비난받을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복신앙이 종교와 결합할 때는 문제가 다르다. 절대자 또는 초월적 존재에 직접 닿을 수 없는 일반인으로서는 그러한 지위에 있는 성직자들을 통해 복을 구하는 일방 그들에게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을 교부한다. 이를 받은 성직자들은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공여한 자의 복을 기원한다.

그러면, 이러한 공여행위를 할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어찌되는가? 현재와 같은 고도화된 경쟁사회에서 어느 일방에게 복을 주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른 일방의 불이익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결국 기복신앙은, 더구나 성직자가 개입된 기복신앙은 사회 공동체를 구성하는 다른 구성원으로 하여금 실패와 좌절을 겪도록 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이 또한 인간의 이기심의 발로가 아닐는지?

나 혼자만 잘 살자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만 가득한 사회. 그러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오래가지 못한다. 이럴 때 나서야 하는 것이 국가다. 적어도 빈곤함 때문에, 더 더위를 느끼거나, 사회에서 낙오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거나 정비해야 한다. 전기요금 누진제를 폐지하든, 취약계층에게 냉방기구를 보급하든, 굳이 절대자에게 복을 기원하지 않아도 누구나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복지제도를 확충해야 한다.

에어컨을 끄면서 우리나라를 진정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제도를 실현하고자 하는 능력과 열정을 가진 정부를 갖게 되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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