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싱클레어> 편집장 곧 경주에 내려가 살 예정이다. 40년의 서울살이가 끝나간다. 40년 중 20년을 홍대 앞에서 독립잡지를 만들고 인디밴드를 하며 살았다. 잘 버텼다. 장하다 아저씨. 연남동의 작은 집에 살아도 이 작은 공간에서 살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하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집세, 전기·수도료, 도시가스 요금, 케이블, 인터넷, 공기청정기 렌털, 자동차세, 자동차보험료, 4인 가족의 보험료와 국민건강보험, 그리고 각자의 통신비. 그 외의 생활비까지 매달 차곡차곡 청구서가 쌓인다. 경주에 가기로 하니 오랜만에 제대로 불국사가 보였다. 곳곳의 능과 시골 초등학교도 풍경과 잘 어울렸다. ‘세상 모든 풍경 중에 제일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는 노래 가사가 절로 나왔다. 그래 내 제자리는 불국사지. 토함산 얼마나 좋아. 석굴암도 있고. 좋다 아저씨. 작년 가을에는 이사 갈 동네의 초등학교 운동회에 다녀왔다. 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맥주 캔과 수육을 나눠주며 천막 아래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전교생 스무 명 남짓한 학교의 운동회는 동네 어르신들의 잔치이기도 한 셈이었다. 나는 그 와중에 젊어 보인다는 이유로 줄다리기에 맨 앞으로 끌려갔고, 대충 해야지 했던 처음 마음과는 달리 잘못 받은 교육 탓에 ‘땅’ 소리와 함께 나도 모르게 영차 영차를 외치고 있었다. 이 얼마나 한가한가. 여기다. 결정적으로 정든 동네, 홍대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은 오랜 단골들이 하나둘 사라지면서였다. 홍대 앞, 연남동은 앓아가고 있었다. 골목골목 잦은 공사로 걷기 싫은 거리가 되어갔다. ‘개척상점약탈’(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파도가 일단 자연스럽게 발을 이끌던 단골집들을 싹 쓸어가 버렸다. 자주 가던 가게들이 없어지니 동네가 외로워졌다. 갑자기 내가 낯선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제자리’를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주 드나들던 경주로 터를 잡았다. 그런데 막상 살기로 마음먹으니 생각지도 않았던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갈)집은 불국사 근방인데 이런, 산 너머에 바로 월성 핵발전소들이 떡 버티고 있는 거다. 세계 최대의 핵발전소 밀집지역이 될 예정이란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불국사의 종소리만이 아니었다. 삼중수소도, 방사능 사고 위험도 우리를 기다리는 풍경 중 하나였다. 아이쿠 아저씨. 아이 둘을 키우며 작은 초등학교에 학부모로 가끔 불국사도 오르며 살아야겠다는 소박한 결심은 생각보다 소박하지 않았다. 우리가 이런 상황의 당사자가 될 거란 상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우습게도 그동안 로또 당첨자가 될 거라는 상상은 어떻게나 자연스러웠던지. 뭐든 부정적인 생각은 말고 당사자가 되고 나서 움직이자고 마음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당사자가 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나마 현실적인 풍경을 미리 보게 된 것은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당사자가 되기 전 예비 당사자로서 당사자의 외로움과 급박함에서 한 박자 빠르게 탈핵을 선언하며 우리가 소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불국사 너머 핵발전소의 존재가 사라질 날들을 상상해보기로 했다. 갑자기 연남동 우리집에는 탈핵의 기운이 가득해졌다. 외부세력이 되는 건가. ‘예비 내부세력 아저씨’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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