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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사진기자들의 신사협정

등록 2016-08-12 19:03수정 2016-08-12 19:47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박상영이 9일 오후(현지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에서 열린 펜싱 남자 에페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환호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박상영이 9일 오후(현지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에서 열린 펜싱 남자 에페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환호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같은 출입처를 나가는 취재기자들의 경우, 타사 기자들은 경쟁자이면서도 동료가 된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니 동료의식이 싹트는 것도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소속이 다르니 마냥 서로가 ‘좋은 게 좋은 거다’란 식으로 지낼 수만은 없다. 누군가의 특종은 필연적으로 다른 이의 낙종으로 이어져 친한 동료가 어느 순간 나를 물먹이는 가장 강력한 적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아무리 동료지만 나를 한 번 물먹인 기자에게 반드시 물 한 번 세게 먹이겠다며 절치부심하기도 한다. 사진기자도 마찬가지다. 매일 아스팔트(사진기자들 사이에서는 국회나 청와대와 같은 특정 출입처가 아닌 일반 뉴스를 취재하는 사람을 칭하는 말이다)에서 얼굴을 보는 사이니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같이 밥이나 술도 먹는 친한 사이지만 막상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생면부지의 사람처럼 상대방의 어깨를 밀어가면서 치열한 앵글 경쟁을 벌이는 그런 비극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신문에서 나의 사진이 옆자리의 동료 것만 못하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나면, 해당 신문의 사진 위로 어제 나랑 떠들고 웃던 동료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원수 같은 인간, 좀 비켜주지.’

전쟁을 치르는 국가 간에도 잠시 싸움을 멈추는 휴전협정이 있는데 사진기자들 사이에도 그런 달달한 게 있을까? 있다. 대표적인 게 올림픽 취재다.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평화의 증진’이라는 거창한 올림픽 정신 때문이 아니라 올림픽 경기를 취재할 수 있는 카드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의해 국가별로 제한적으로 제공된다는 뜻밖의 이유 때문이다. 장소와 운영 등의 이유로 취재인원을 제한하는 조치인데, 문제는 -우리가 보기엔- 국력에 따라 할당량을 정하다 보니 우리나라엔 취재인원에 비해 적은 수의 프레스카드가 나온다는 것. 적은 출입카드를 가지고 각 신문사가 취재 분담금을 내고 각 사 한 명(할당량이 적으면 그마저도 추첨하게 되는데 최악의 경우엔 분담금만 내고 사진기자는 못 가는 회사도 나오게 된다)의 사진기자들로 풀단이 꾸려지는데, 일종의 연합군(?)인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이 탄생한다. 이 연합군은 단장을 중심으로 올림픽 현장에서 마치 하나의 회사처럼 취재와 마감을 해 분담금을 낸 회원사에 사진을 공급한다. 개별적으로 보면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인재들인지라 거뜬히 지구를 지킬 것 같지만 실상은 복잡하다. 각 사에서 한 명씩 파견되다 보니 저마다의 생각과 능력은 천차만별인데 지휘체계는 비교적 느슨하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다 모으면 뭐할 것인가? 팀워크가 모래알이어서 그 엄청난 힘으로 서로 싸우기라도 한다면 지구가 절단 날 일인데.

아무리 팀워크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사람인지라 우리 기자가 찍은 근사한 사진은 어떻게 해서라도 티를 내고 싶은 게 사람 욕심이다. 많은 경비 들여 그 먼 곳까지 보내고도 자기 회사 기자 이름을 못 쓰는 상황인데, 설상가상으로 그곳에 간 우리 기자가 단독성 사진을 찍었다? 서울에 있는 데스크들은 그 이름 석 자를 지면에 새기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나 룰은 지키라고 만든 법. 그 많은 올림픽 경기를 한 명이 다 커버할 수도 없고 내 이름 석 자 못 적는 만큼 남의 식구가 해 온 그림 같은 사진도 우리 지면에 걱정 없이 실을 수 있으니 아쉬움을 달랜다. 이번 주 웁스구라엔 리우 올림픽 사진 중의 한 장면을 싣는다. 물론 공동취재단 이름으로 지면에 썼다. 그런데도 여기에 한 번 더 쓴다. 이유는? 눈치 빠른 사람들은 다 알겠지. 사진기자들이 모처럼 맺은 신사협정을 내가 깰 순 없잖은가?

윤운식 사진에디터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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