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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오줌 맛, 먹어보고 얘기합시다 / 정세라

등록 2016-08-14 18:02수정 2016-08-14 19:06

정세라
경제에디터석 정책금융팀장

“통에 오줌 받아 놓으셨지요? 오줌은 무균 상태로 나오기 때문에 먹어도 괜찮습니다.” 영화 <터널>에서 수일째 무너진 터널에 갇힌 하정우와의 전화 통화에서 구조대장 오달수가 말한다. 하정우는 묻는다. “먹어보셨어요?” 순간 구조대장은 말문이 막혀버린다.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최적의 해법을 알려준답시고 얘기했지만, 이른바 ‘전문가’나 ‘정책책임자’가 곤경에 빠진 당사자의 처지로부터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는지 민낯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물론 인간적인 책임자 오달수는 뒤늦게라도 화장실에서 자기 오줌을 받아 마셔본 뒤, “차게 식혀서 먹으면 낫다”고 공감과 위로를 건넨다.

지난 한주 폭염은 모든 사회적 이슈를 ‘전기세 공방’의 용광로에 녹여버렸다. 그럴 만했다. 그만큼 더웠다. 도무지 24시간 내내 식지 않는 열기 속에서 하루에 4시간 ‘합리적’으로 에어컨을 켜면, 전기세 폭탄을 맞지 않는다는 정부 책임자의 전문가적 설명에 사람들의 분노는 ‘펑’ 터져버렸다.

물론 전력 수요 억제의 문제는 중요하다. 원전 증설과 환경 문제 등 장기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할 문제들이 첩첩이 쌓여 있다. 하지만 올여름의 문제는 제한된 사용 여력 안에서의 형평성이다. 미래세대를 위해 전기 다소비 구조를 바꿔가야 하지만, 그 부담이 현재 한쪽에 지나치게 쏠린 것은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는 얘기다.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는 정부 관료의 말마따나 “목적과 장점이 있(었)다”. 경제개발 시절에 가정용 수요를 억제해 산업용을 싸게 공급하고, 가전제품이 사치품이던 시절에 전력 사용량에 따라 계층 간 형평성을 기했다. 실제 2009년 국감 자료를 보면, 가정용 전기 최다 사용자 20위권엔 1~2위 삼성가 자택을 비롯해 수천만원의 전기료를 내는 재벌가 이름이 줄줄이 올라 있다. 누진제 개편 반대 논리로 정부 관료가 “부자 감세”를 들고나온 데는 이런 사실들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요 몇년 사이에 전력 사용의 기본 여건은 크게 바뀌었다. 기존 누진제가 수천만원도 아쉽지 않은 재벌가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한테 과중한 징벌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주택용 전력원가가 ㎾h당 145원 안팎으로 추정되는데 2014년 말 기준으로 2250여만 가구 가운데 81.3%가 ㎾h당 187.9~709.5원을 내야 하는 월 200㎾h 이상 전력 사용 구간에 속해 있다. 또 국가통계포털은 에어컨 가구당 보급률이 2000년 0.29대에서 2009년 0.6대로 늘어났고, 가장 최근 통계인 2013년엔 0.78대까지 올라갔다고 알려준다. 소득수준별 보급률을 봐도, 월소득 151만~200만원 가구 0.68대, 201만~250만원 가구 0.83대, 251만~300만원 0.9대, 301만~400만원 0.91대 등으로, 에어컨이 사치품이 아니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집에 머무는 전업주부나 아이·노인들은 물론 찜통 주차장 안내나 야외 배달 업무 등으로 지친 보통 사람들이 기록적인 폭염에 “에어컨이 자린고비의 굴비냐”고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주말에 동네 편의점에서 보니, ㎾h당 105.7원의 상업용 전기를 쓰고 있을 대형 에어컨의 온도는 18.5도였다. 다니러 간 친정집에선 식구들이 에어컨 26도를 설정하면, 친정엄마가 “춥다”고 오버하며 28도로 올리는 ‘절전’ 실랑이가 한창이었다. 지난 검침일로부터 보름간 친정집에서 쓴 전력량은 387㎾h다. 평소보다 200㎾h나 진도가 더 나갔다. 더위가 하루아침에 식을 것 같진 않으니, 징벌적 최고구간을 넘어서 600 고지를 찍는 건 불가피할 게다. 어쩌나.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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