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는 독특한 상품이다. 일반 상품과 달리, 일물일가의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수요주체와 목적, 언제 어디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요금이 천차만별이다. 공급 원가가 때와 장소에 따라 다 다르다.
그렇지만 전기사업자는 공급량과 공급 가격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모든 국민이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전기를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전기사업법 6조는 ‘보편적 공급’의 의무를 정부와 사업자에게 지우고 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전기공급을 거부하거나 지연할 경우에는 거액의 과징금을 물게 되어 있다.
전기 거래의 강제성은 수요 쪽도 마찬가지이다. 시장경제에서 어떤 재화나 서비스는 가격과 품질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에 따라 다양한 거래가 이뤄진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소비패턴에 적합한 가격을 내고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전기는 가격과 공급자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이 없다. 한국전력이 여러 발전사업자로부터 실시간으로 생산한 전기를 모아서 독점 공급하는 전기만 쓸 수 있다. 요금도 한전이 매달 보내는 청구서대로 꼬박꼬박 내야 한다. 국적을 바꾸지 않는 한 이런 강제를 벗어날 수 없다.
전기사업자에게 보편적 공급의 의무는 교차보조를 통해 이뤄진다. 교차보조란, 원가보다 비싼 요금을 받는 곳에서 발생한 초과이윤을 수익성이 떨어지는 쪽에 배분해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현행 전기요금 체계에서는 누가 보조를 하고 누가 보조를 받는 걸까? 지금으로선 정확히 알 수 없다. 정부와 한전이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자세한 원가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용 전기의 누진요금제 개편안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이참에 주택용 요금의 일시적 조정에 그칠 게 아니라 전기요금 체계 전반에 대해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투명성과 공정성이 논의의 전제다.
박순빈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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