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택
논설위원
청와대가 ‘국기문란’ ‘부패한 기득권 세력’ 발언을 잇달아 쏟아낸 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개인 비리가 정권 차원의 문제로 커지는 분위기다.
청와대가 말하는 ‘부패 세력’은 한 유력 일간지의 고위 간부를 겨냥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형이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를 맡는 과정에 부당 개입하고 홍보업체에서 고가의 선물을 받은 혐의라는 게 미확인 소문의 실체다. 여권에선 애초 이를 무마해보려다 먹히지 않자 우 수석을 공격하고 나선 것이라는 말도 은근히 흘린다. 권력의 비리를 비판할 ‘깨끗한 손’의 자격이 있느냐는 딴죽이다.
특별감찰관의 수사의뢰 직후 청와대가 ‘국기문란’ 운운하면서까지 우 수석을 감싼 것은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검찰을 주무르며 위기를 관리해줄 마땅한 대타가 없기 때문이란 해석이 많지만 한 청와대 출신 인사는 ‘약점설’에 무게를 실었다. 재산 문제나 퇴임 뒤 구상 등 대통령의 비밀을 알게 된 그를 내치기 어려웠던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삼성 125억원 등 대기업들이 몇달 만에 900억원 가까이 출연한 ‘미르’ 등 두 재단에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이 관여하고 있다는 보도도 이런 의혹의 근거가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석수 특별감찰관 우병우 민정수석.
당장 수사선상에 오른 우 수석 문제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윤갑근 특별수사팀은 우 수석 일가의 땅과 서류상 기업, 아들 보직 등 최근 거론돼온 개인 비리에 초점을 맞출 모양이다. 그러나 의경 보직변경보다 심각한 직권남용 사안이 적지 않다.
그가 민정수석 취임 3개월 뒤인 지난해 4월 몇몇 기자와 나눈 대화가 최근 한 월간지에 실렸다. “검찰총장 권력이 지 거냐. 실제 권한은 1년이다.” 기자가 그렇게 ‘냉소적’인 반응의 이유를 다시 물을 정도로 반감이 묻어나는 어투다. 실제 당시 검찰총장이 갓 민정수석이 된 그에게 앞으로는 ‘전화를 (통한 수사개입을) 삼가달라’고 요청해 둘 사이 관계가 내내 껄끄러웠다고 한다. 대신 우 수석은 기자들에게도 그 존재를 부인하지 않은 ‘우병우 사단’ 검사들을 활용했고, 보다못한 총장이 이들에게 경고를 보낸 일도 있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 말기 한 검찰총장은 검사장에게 “(수사 중인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하라”고 전화해 사실상 수사를 중단시킨 혐의로 직권남용죄, 불구속 방침을 미리 알려줬다는 이유만으로도 공무상 비밀 누설죄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우 수석이 대통령에게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는 주요 사건들이 처리되는 과정을 보면 불법의 소지가 크다. 청와대로부터 해경 123정장의 구속영장에 업무상 과실치사 대신 허위공문서 작성 등 가벼운 혐의만 넣으란 요구를 받았다는 검사장의 증언이 나온 세월호 참사, ‘십상시’ ‘삼인방’으로 불리는 측근 정치의 폐해 대신 조응천 비서관 등의 문서유출에 초점이 맞춰졌던 정윤회 게이트 수사 과정엔 직권남용이 없었을까.
홍만표 변호사는 정운호 대표에게 ‘우병우 잡아놨다’고 했다는데 검찰 수사에선 왜 빠졌는지,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 정권 실세들의 방송법·선거법 위반 사건이나 어버이 게이트 등 청와대 관련 고소고발 사건은 왜 하나같이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지, 역시 ‘우병우 사단’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검찰총장이 경고할 정도라면 검사의 ‘권리행사를 방해’하지 않았는지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부패 세력’ 수사 상황을 보고받고 누설하거나 기자의 취재메모를 부적절하게 입수·활용했는지도 밝혀져야 한다.
운명의 장난처럼 우 수석은 7년 전과 같이 손에 고급시계를 들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제는 벼랑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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