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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브렉시트 이후 새로운 질서 / 김남국

등록 2016-08-28 17:48수정 2016-08-28 18:55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6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가 주었던 충격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 금융시장에 미친 여파가 곧 가라앉았고 우리나라에 직접 끼친 영향도 특별한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출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 기준 9.1%, 영국이 1.4%이고,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투자 비중은 2016년 5월말 기준 32.5%, 그 가운데 영국의 비중은 외국인 전체의 8.4%에 그치기 때문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초점을 경제에 맞출 경우 큰 의미를 찾기 힘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 투표 결과가 향후 세계 질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는 여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 차원에서 보면 영국이 과연 이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민주주의 유형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아니면 자신들도 그 의미를 몰랐던 우연한 소란에 그칠지가 흥미롭다. 영국은 2차 대전 이후 최초로 복지국가를 탄생시켰고 대처리즘이라는 신보수주의 정치모델을 만들어 세계 정치의 방향을 바꾼 바 있다. 브렉시트 역시 대의민주주의의 적실성에 대해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선거구민의 단순한 대리인이 아닌 독립적이고 탁월한 대표와 공공선을 향한 중립적인 심의를 전제하는 대의민주주의는 영국에서처럼 정작 중요한 문제에 대해 위임된 심의를 포기하고 국민에게 결정을 떠넘길 때 정치지도자에 대한 불신이 폭발하면서 심각한 신뢰 위기를 맞고 있다.

직접민주주의가 항상 믿을 만한 대안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의 정치에 적나라하게 노출된 지난 투표에서 영국의 18~24살 청년층 73%가 유럽연합을 지지했지만 36%만이 투표에 참여했다. 그러나 65살 이상 노년층은 40%가 유럽연합을 지지하고 83%가 투표에 참여했다. 유럽 전역에서 유럽연합에 대한 지지는 청년층에서 높고 노년층에서 낮다. 그러나 투표참여율은 반대로 나타난다. 만약 유럽통합의 미래에 대해 오늘 국민투표가 실시된다면 어느 나라에서든지 통합 반대 세력이 이길 확률이 높을 것이다.

유럽 차원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역시 통합이 지속될 것인가 아니면 후퇴할 것인가이다. 유럽은 근대 공화국의 출범이라는 인류사의 성취와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파괴를 모두 주도한 지역이었다. 이 유산을 극복하기 위해 통합을 추진했지만 노동시장의 경쟁 심화와 유럽의 정체성 위협을 이유로 반유럽연합, 반이민을 외치는 극우정당들이 통합 저지에 앞장서고 있다. 반면 하버마스 같은 철학자는 신자유주의 물결에서 낙오하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치적 사령탑이 필요하기 때문에 통합을 지지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연합은 이제 재정통합까지 고려하는 높은 단계의 통합을 지속할지, 아니면 자율과 분권을 보장하면서 연대하는 국민국가 연합체로 후퇴할지 고민할 것이다.

세계 차원에서 브렉시트가 제기하는 질문은 미국 중심의 패권체제가 안정될 것인가, 아니면 신고립주의에 근거한 새로운 질서가 등장할 것인가이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pivot to Asia)은 유럽의 안정을 전제로 중국 패권의 부상을 견제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유럽의 분열을 틈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한 사건 등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다시 유럽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은 동북아 국제정세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한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가장 먼저 참여했던 것처럼 중국과 경제협력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할 수 있고 이런 영·중 관계 변화도 한국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한국이 직접적 경제이해뿐 아니라 브렉시트 이후 새로운 세계 질서 등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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