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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불 끄랬더니 기름 부은 ‘한심한 정부’ / 안재승

등록 2016-09-01 18:12수정 2016-09-01 20:45

안재승
논설위원

정부가 지난주 ‘가계부채 대책’을 내놨다. 박근혜 정부 들어 다섯번째다. 가계부채가 말 그대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말 기준 가계부채 총액이 1257조원이다. 정부는 올해 2월부터 은행 대출 심사를 강화한 ‘여신 심사 가이드라인’을 시행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상반기에만 가계부채가 54조원이나 증가했다.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2년 이후 최대 규모다. 이런 추세라면 연말에는 가계부채 총액이 130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8월4일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단지 안에 있는 부동산중개업소에 붙은 매매 가격 안내문. 연합뉴스
8월4일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단지 안에 있는 부동산중개업소에 붙은 매매 가격 안내문. 연합뉴스
가계부채의 폭발적 증가는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2014년 7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하면서 정부는 ‘집값 띄우기’를 통한 경기 부양에 올인했다. 부동산시장의 안전판인 분양가 상한제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폐지하고,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유예를 연장했다. 특히 분양권 전매 제한을 풀고, 재당첨을 허용하고, 아파트 중도금 대출 건수를 1인당 4건까지 허용했다. 돈을 빌려 아파트를 여러 채 분양받은 뒤 되팔 수 있게 한 것이다. 정부가 사실상 투기판을 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저금리 상황에서 각종 규제가 풀리다 보니 돈은 부동산시장으로 몰렸고, 집값은 치솟았고, 가계부채는 급증했다. 악순환이 벌어진 것이다. 최 부총리 취임 직전인 2014년 6월말 1036조원이던 가계부채가 2016년 6월말 1257조원이 됐다. 불과 2년 사이에 221조원이나 늘었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의 증가액 193조원보다도 많고, 이명박 정부 5년간의 240조원과 비슷하다.

정부가 이번에 정말 가계부채 증가세를 막아볼 요량이었다면 분양권 전매와 재당첨 제한, 중도금 집단대출에 대한 총부채상환비율(DTI) 적용 같은 강력한 대책을 내놨어야 했다. 그러나 알맹이는 다 빠진 맹탕 대책이 나왔다. 이른바 ‘공급 조절 대책’이다. 정부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의 공공택지 공급 물량을 줄이고, 밀어내기식 주택 공급을 막기 위해 ‘분양보증 예비심사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주택 공급량을 줄이면 거래량도 감소하고 대출도 축소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오히려 집값 상승 기대감을 부추겨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반론이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사달이 났다. 주택 공급을 줄이겠다는 정부 발표가 시장에선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조바심이 난 실수요자들과 더 큰 전매차익을 남기려는 투기세력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지난 주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주요 모델하우스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정부가 ‘가계부채 대책’이 아닌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는 비아냥이 나왔다. 상황이 꼬여가자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29일 “분양 시장 과열이 지속될 경우 즉각 대응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겠다”고 밝혔다.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한 지 나흘 만에 또 대책 얘기를 꺼낸 것이다.

매번 이런 식이다. 지난 2월 은행 대출 심사를 강화하자 대출 수요가 제2금융권으로 몰렸다. ‘풍선효과’가 나타나면서 가계부채의 질까지 악화시켰다. 정부가 ‘땜질 처방’을 되풀이하는 것은 부동산 경기에 의존한 성장의 유혹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 폭탄은 내 임기 중에만 터지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무책임도 엿보인다.

그러나 이제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브렉시트로 연기됐던 미국의 금리인상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가계부채 폭탄이 터지는 것을 지연시켜온 초저금리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때 가서 땅을 치고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jsahn@hani.co.kr

[디스팩트 시즌3#18_8.25대책, 가계부채 줄이랬더니 부동산 경기 부채질]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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