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싱클레어> 편집장 새벽 세시 반, 병원 문을 나서니 6차선 대로변이다. 쌩쌩 달리는 차들을 바라보며 아픈 아내와, 잠든 아이와, 우리 동네가 낯선 아빠가 택시를 잡으려 손을 흔든다. 이야기는 이렇다. 밤 11시경 아내가 복통을 호소했다. 아내는 둘째를 임신한 상태라 아무 약이나 먹을 수 없었고, 우선 매실청으로 속을 가라앉혀보려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등도 두드려보고 발도 주물러보았지만 안 되겠다 싶어 자주 가던 병원 응급실에 가려 했는데 아내는 걸을 수 없었고, 4살짜리 딸도 혼자 둘 수 없으니 119를 부르고 짐을 쌌다. 장난감 몇 개, 간식으로 먹일 견과류와 우유, 기저귀와 갈아입힐 옷, 아내의 짐 조금. 119는 빨리 왔고(고맙습니다) 들것이 2층 우리집으로 올라왔다. 마침 귀가하던 젊은 부부가 자동문도 잡아주고 좁은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데 도움을 주었다(처음 보는 분들이었는데 고맙습니다). 나는 아이를 안고 구급차에 올랐다.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런저런 질문과 대답이 오갔고, 나는 우리가 자주 가는 단골 응급실로 가달라고 말했지만 환자가 임신부라 산부인과가 있는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마도 근처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병원으로 가야 할 터였다. 뻔한 상황이 그려졌지만 더 고집을 부릴 수는 없어서 일단 그렇게 하기로 했다. 구급차에서 내리자마자 간호사가 왔다. ‘다시’ 이런저런 질문과 대답이 오갔고, ‘다시’ 환자는 임신부이며 맹장수술은 했다고 얘기했다. 침대를 바꾸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니 다른 간호사가 왔다. 간호사는 환자복을 주며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맙소사 엑스레이! 멀러 박사가 초파리에 쬐어 돌연변이를 연구했다던, 그 엑스선! ‘또다시’ 나는 환자가 임신부이며 복통이 있다, 하지만 맹장수술은 했다는 이야기를 해야 했다. 일단 4살짜리 딸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간식을 먹이고 핸드폰으로 조용히 만화를 틀어줬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나 봐요.’ 간호사가 친절하게도 우리의 상황을 잘 브리핑해 주었다. 아내는 다행히 2시간이 지나니 통증이 나아지는 것 같다고 했고, 우리는 집에 가고 싶었다. 의사는 진료를 더 받아보길 권했지만 딸아이의 인내심도 바닥이 나고 있었고, 그 거대한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려면 또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게 뻔했다. 우리는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했고, 그러고 나서 수액을 빼는 데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병원을 나와 응급실 문 앞에 서니 집에 갈 길이 까마득했다. 직원분에게 여쭤보니 큰길에 나가서 택시를 잡는 게 빠를 거라고 한다(고맙습니다). 6차선 대로변, 쌩쌩 달리는 차들. 아픈 아내와, 잠든 아이와, 우리 동네가 낯선 아빠.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의 말이 떠올랐다.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돕는 데는 1파운드의 기술과 1000파운드의 기술의 중간기술이 필요하다. 그것 역시 상징적으로 100파운드의 기술이라 부르기로 하자.’(<작은 것이 아름답다>, 김진욱 옮김, 범우사) 우리 동네에서 중간 크기의 병원은 이제 한 군데뿐이다. 그곳이 무슨 전문병원이 되어버리면 우리는 무조건 급할 때는 이 거대한 병원으로 와야 한다. 작은 단골 응급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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