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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우렁각시의 비밀

등록 2016-09-10 00:49수정 2016-09-10 00:54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손경희 공공비정규직노조 서경지부 강서지회장이 김포공항 1층 화장실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여성 화장실의 한 칸)에 앉아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손경희 공공비정규직노조 서경지부 강서지회장이 김포공항 1층 화장실 청소노동자 휴게공간(여성 화장실의 한 칸)에 앉아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밖에서 일하다 들어오면 짠~하고 깨끗하게 청소돼 있고 밥도 잘 차려져 있게 하는 우렁각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전설에 따르면 우렁이가 각시로 변해 집주인이 일하러 나간 사이에 밥과 청소를 해놓고 사라진다는 것인데, 거기다 예쁘기까지 하다니 이 얼마나 훈훈한 이야기인가? 하지만, 집안이 폭탄 맞은 것처럼 지저분하고 끼니를 거르는 한이 있더라도 어여쁜 처자가 집에서 자기 몰래 밥하고 청소해 놓고 간다는 상황을 같이 사는 여자가 받아들일 리 없다. ‘우렁각시 타령 말고 네가 좀 해라’ 그럴 거다. 하긴, 우렁각시가 총각 집에 나타나면 동화가 되지만 유부남 집에 나타나면 <사랑과 전쟁>이 된다. 이런! 순수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가엾은 인생이라니.

도시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은 더러움을 모르고 산다. 쪽 빠진 건물의 반질반질한 대리석 바닥을 보면 도대체 이 많은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이 어찌 이렇게 깨끗할 수가 있는지 그저 경이롭기만 하다. 그렇게 우리는 깨끗함에 길들어왔다. 그 길든 감성은 또 다른 곳을 외면하는 외눈박이를 만들었다. 대형마트에서 쉴새없이 걸레질을 하는 청소노동자도, 아침마다 가로수 사이를 비질하는 환경미화원도 존재감이 없다. 많은 사람이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빼곡히 들어서 살지만 그들은 인파 속의 투명인간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니 일하는 현장도 대우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인가? 그들을 고용했던 이들도 청소노동자가 쉴 때는 눈앞에서 사라지길 바랐던가 보다. 마치 우렁각시가 청소, 빨래, 밥하고 감쪽같이 사라졌던 것처럼 말이다.

김포공항 청소노동자. 사진에 나온 주인공 손경희씨는 공공비정규직노조 서경지부 강서지회장이다. 직책은 무시무시한 것 같지만 정규직 노조에서도 외면받는 힘없는 비정규직이다. ‘기자님들 오시게 하려고’ 삭발을 했다는 손씨는 삭발도, 노조도, 파업도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것이라고 했다. 30년을 근무해도 시급 6030원, 낙하산 인사로 내려온 이들의 횡포와 불법이 판치는 노무관리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고, 술시중과 성추행, 인격모독…. 걸레로도 닦이지 않을 악취나는 노동현실의 실체가 잘 닦인 대리석 바닥 위로 오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손씨와는 마주앉아 조용히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없었다고 한다. 30분 주어진 휴식 시간에 이동하는 게 무리인 장소에 마련된 대기실은 그림의 떡이었다. 이들이 쉬는 곳은 김포공항 1층 여자화장실 한쪽에 마련된 물품창고. 사진기자는 공간이 너무 좁아 8밀리 어안렌즈로 찍었다. 카메라를 들고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면 기자의 발등이 보일 정도로 넓은 화각을 가진 렌즈이건만 역설적으로 공간이 얼마나 좁은 곳인지를 말해주었다. 이곳에 간이의자 하나 놓고 남들 용변 소릴 들으며 간식을 먹기도 했다고 했다. 남들처럼 커피나 아이스크림을 먹다 시말서를 쓴 적도 있었다고 했다. 각시가 우렁이 껍질 속에 숨듯, 넓은 공항 한 귀퉁이에 몸을 숨겼다. 그런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면서도 이들이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월급은 제 날짜에 나오잖아요.’ 제 날짜에 나오는 최저임금이 이렇게 강력했구나.

모두 우렁각시 이야기를 알지만 의외로 그 결말을 아는 이는 드물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해피엔딩과 그 반대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가지를 뻗어 존재한다. 우리는 우렁각시가 몰래 청소하고 밥하는 것만 알았지 정작 그 주인공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화려하고 깨끗한 도시에서 투명인간들처럼 오가는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윤운식 사진에디터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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