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조합원들이 지난 지난 2014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MBC) 신사옥 앞에서 “회사는 법원의 복직 결정을 따르라”고 촉구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추석 연휴 마지막날 오후에 고등학교 후배 한 명을 만났다. 그는 최근 암 판정을 받았다. 그것도 ‘복막암’이라는 매우 희소한 암이다. 복막은 복강을 둘러싼 얇은 막 조직으로 복강 내 장기를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곳인데 이곳에 악성 종양이 생겼다. 병세가 악화할 때까지 자각증상도 별로 없는 고약한 병이다.
우리나라에서 수술 잘하기로 첫손가락 꼽히는 대형병원에서는 수술 불가능 판정을 내렸다. 암세포가 너무 많이 퍼져 수술하기에는 늦었다는 판단에서다. 다행히 일산 국립암센터 쪽에서 수술을 한번 해보자고 나섰다. 다음달에 수술 날짜도 잡혔다. 하지만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수술이다. 복막뿐 아니라 다른 장기에도 암세포가 전이돼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그는 이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섰다.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문화방송 파업 당시 노조 홍보국장을 지내다 해고된 이용마 기자 이야기다.
동네 한 커피숍에서 마주한 그는 예상외로 꿋꿋하고 침착했다. 자신의 증세와 상태, 수술 계획 등을 담담히 설명했다. 평소의 단단하고 흐트러짐 없는 모습에 변함이 없었다. “암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암 선고가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있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암 발병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꺼렸다. 어렵사리 그를 설득했다. “병은 되도록 널리 광고해야 한다고 하지 않느냐”는 논리도 동원했다.
복막암의 발병 원인을 규명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의 암 발병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화병’이라고 말한다. “얼마나 속이 썩었으면 그런 몹쓸 병에 걸렸을까.” 실제로 그의 친가나 외가 쪽 모두 암에 걸린 사람이 없다고 하니 일단 유전과는 무관해 보인다.
그가 해고된 지도 어느덧 4년 6개월이 흘렀다. 그사이 해고무효 소송, 업무방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각종 법정 다툼도 지루하게 이어졌다. 법원은 1심과 2심 모두 해직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회사 쪽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해직자들이 낸 ‘근로자 지위 보전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자 마지못해 복직을 시킨 적도 있었으나, 6개월 동안 건물 한구석 골방에 처넣고 일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2심 판결이 나오자 “다시 가처분 신청을 내라”며 해직 상태로 되돌려버렸다. 대법원 판결까지 계속 버티자는 심산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울화병에 걸릴 지경인데 본인들은 오죽했을까. 이용마 기자는 해직 뒤 대학원 공부를 계속해 정치학 박사 학위도 따고, 대학교 강의, 팟캐스트 진행자 등으로 열심히 살았으나 가슴속에서 시시때때로 솟구치는 불길을 쉽게 끄지는 못했으리라. ‘심화’는 사람을 태운다.
그의 나이 이제 겨우 마흔여덟. 졸지에 직장을 잃은 남편을 대신해 직업 전선에 뛰어든 아내와 갓 초등학교 2학년인 귀염둥이 아들 쌍둥이를 남겨두고 떠나기에는 너무 원통하고 이른 나이다. 다시 치열한 언론 현장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시간을 무위로 돌리고 여기서 꺾일 수도 없다. 게다가 그를 해고한 사람들은 여전히 희희낙락하며 잘만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 그런 비극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일어나서는 안 된다.
애초 칼럼을 통해 암 투병 소식을 알리겠다고 했을 때 그가 우려한 것은 자신의 개인 문제가 너무 부각되는 점이었다. “해직된 뒤에도 공영언론이 잘만 굴러간다면 그래도 위안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을 보면서 느끼는 참담함”, “방송이 백주에 사실을 왜곡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토로했다. 그러나 글을 쓰는 자의 감정의 일렁임 탓에 그의 바람을 담아내지 못했다. 다만 이것만큼은 말하고 싶다. 세상을 떠받치는 힘은 상식과 공감이며 언론의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고. 그런데도 대다수 언론은 상식을 외면한 채 그들의 고통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고, 심지어 이념의 색깔을 씌워 모욕하는 언론마저 있었다. 이용마 기자의 암 발병은 언론의 이런 무관심, 적대감과 무관한 것일까.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언론인의 윤리 문제가 언론계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언론인의 윤리 준수는 실로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제대로 된 언론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공정언론을 가로막는 권력의 힘은 여전히 언론계의 하늘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놓인 한 젊은 후배 기자를 바라보며 언론계의 상식과 공감, 연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