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지난 9월 말부터 ‘김영란법’이 시행되었다. 여론조사에서 70%가 넘는 사람들이 이를 환영하고 있다고 나타난 것을 보면, 공직자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대중적인 불만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부정부패는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이 법이 발의되는 계기가 ‘벤츠 검사 사건’이었던 것처럼, 문제의 출발점은 사법에 대한 불신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영화에서 검찰을 비롯한 권력자들의 부정부패는 단골 메뉴였고, 사법뿐만 아니라 권력 운용이 전반적으로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대부분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 이는 ‘수저’로 상징되는 신분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실감’과도 연동되어 이 사회에 대한 절망을 조성한다. 4·16 때도 그랬던 것처럼 어김없이 소비 위축만을 걱정하는 대통령의 생각과 달리 이 법이 통과되고 시행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절망의 확산이 이 사회를 근간으로부터 뒤흔들지도 모른다는 권력층의 불안이 크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시행에 맞춰 청와대에서는 “누구나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청렴사회”를 만들기 위한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말에서 그들의 문제의식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공정성은 ‘경쟁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경쟁은 반드시 불평등을 낳는다. 그런데 그 경쟁이 불공정한 것으로 느껴진다면, 누가 그런 경쟁에 참여할 것이며, 누가 그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이겠는가. 공정성은 이 지점에서 필요해지는 것이며, 그 목적은 경쟁에 대한, 결국에는 불평등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불식하는 데 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경쟁이 결코 자의적인 것이 아니며 불평등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납득시키기 위해 부정부패는 척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부정부패를 부각시키는 이런 논법의 문제는 불평등의 문제를 불공정의 문제로 치환하는 데 있다. 공정한 경쟁이라고 하면서 공정성이 부각될 때, 경쟁 자체가 지닌 문제는 가려진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치열한 생존경쟁을 강요받는 상황 속에 있지 않다면, ‘부정청탁’이 이렇게 많을 수 있을까? 경쟁의 심화는 심판의 권한을 증대시킨다. 경쟁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 결과를 판정할 수 있는 인물이 지니는 힘은 막강해지는 것이다. 그의 말 한마디로 운명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면, 청탁을 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청탁의 문제를 경쟁과 불평등의 산물로 볼 때, 최근 김영란 발의자 스스로가 이 법은 공무원들이 청탁을 거절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임을 밝힌 사실은 중요하다. 청탁은 공직자를 기구의 일부가 아니라 개인으로 만든다. 그때 공직자는 자신이 권력자임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그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의 판단이 남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부담스럽고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부정청탁’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상황을 차단할 수 있으면, 공직자들은 자신이 행사하는 권력에 대해 개인적 부담감을 덜 수 있게 된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공직자들이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지 판단해야 하는 상황은 반복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공직자들 개개인이 느껴야 할 불편함을 김영란법이 덜어준다면, 오히려 그 기능은 신자유주의를 보완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영화 <밀정>에서 조선총독부의 경찰이었던 주인공이 독립운동가로 변신하게 된 계기가 다름 아닌 ‘부정청탁’이었음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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