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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김영란법과 란파라치 / 이창범

등록 2016-10-10 18:29수정 2016-10-10 22:09

이창범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교수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란파라치’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파파라치 학원들이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벌써 서울에만 수십개의 학원이 생기고 수강 문의도 줄을 잇고 있단다. 란파라치들의 주요 무기인 몰래카메라도 역시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는 모양이다. 교통법규 위반 파파라치가 처음 생겼을 때 이상으로 관심이 뜨겁다고 한다. 김영란법 위반 행위를 신고할 경우 신고 포상금이 최대 2억원이고 보상금은 최대 30억원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터넷상에서는 란파라치를 피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과 무용담이 떠돈다.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 등 유명인의 이름을 도용해서 음식점이나 골프장 예약을 한다거나, 회식이나 모임 장소에서는 서로 초면임에도 사전에 양해를 구해 직책이나 이름 대신 무조건 형, 아우, 김 대리로 부르기로 한다고 한다. 방명록에 이름을 적는 것도 꺼리고, 기업에서는 임원의 행선지를 비서에게도 알리지 않는다고 한다. 직업적인 모임뿐만 아니라 친구 간의 모임에도 가명을 사용한다니 더욱 슬프다.

란파라치들은 그들대로 불만이 많다고 한다. 불법 상황이 그대로 드러나는 교통법규 위반 행위와 달리 부정청탁이나 접대는 사람들이 너무 머리를 굴리기 때문에 법 위반 행위를 적발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입증자료를 과도하게 요구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객관적 증거 확보를 위해 몰래카메라로 무장할 수밖에 없고, 무단으로 음식점, 장례식장, 결혼식장 등을 방문하여 화환, 방명록 등을 촬영하고, 심지어 타인의 영상을 촬영하거나 대화를 녹음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지만, 그들조차도 대부분 법 시행으로 좀더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에 다가갈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가 훨씬 더 큰 것이 사실이다. 사회가 스스로 투명해질 수 없다면 법을 제정해서라도 사회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정부 본연의 역할일 것이다. 이를 앞당기기 위해 김영란법에 위반행위 신고·보상 제도를 도입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란파라치들의 무분별한 사생활 침해와 개인정보 수집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란파라치들이 “직업 삼아” 타인의 영업장을 방문하여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영상정보를 촬영하는 행위는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벌칙도 무거워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식사 목적이나 애도 또는 축하 목적 없이 파파라치 목적으로 타인의 식당 등의 영업장을 방문했다면 형법상 주거침입죄가 성립할 수도 있고, 타인 간의 대화를 무단으로 녹음한 경우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를 포함하여 공공기관이 해당 정보가 불법으로 수집된 개인정보인 사정을 알면서도 란파라치의 신고를 받았다면 공공기관 자신도 개인정보보호법상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국민권익위는 신고포상제만 홍보할 게 아니라, 그와 함께 국민에게 적법한 신고 방법도 알리고 홍보할 의무가 있다. 이른 시일 안에 신고포상제도의 기준을 공개해 김영란법이 불신사회를 조장하는 법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교통법규 위반 신고제도 도입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당시에는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되지 않아 파파라치를 처벌할 근거가 없었으나 지금은 개인정보의 불법수집 행위가 엄격히 금지되고 있다. 신고포상제도는 내부고발자 등이 우연히 알게 되거나 수집한 정보로 한정해서 운영되어야 하고, 현행법상 직업 삼아 수집한 정보는 불법 정보이며 보상이나 포상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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