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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계의 창] 트럼프가 끼친 폐해 / 존 페퍼

등록 2016-10-16 18:05수정 2016-10-16 19:05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대가족은 휴가 때 한자리에 모였다. 내 삼촌 중 한명은 턱수염 없는 산타클로스와 비슷하게 생긴, 거구에 뚱뚱한 사람이었다. 그는 웃고 농담하기를 좋아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그가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삼촌의 말이 너무나 부적절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의 농담은 종종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적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는 손님들에게 모욕적인 말을 던졌다. 그가 모욕적인 말을 할 때마다 부모님이 겁에 질리는 것을 지켜봤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하기’(political correctness)라는 말이 생기기 전이었지만, 삼촌은 정말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삼촌의 가장 큰 결점은 시대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미국인들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적 농담을 했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시민권운동과 페미니스트 혁명, 엘지비티(LGBT: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싸움의 승리로 바뀌었다.

내 삼촌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내 삼촌은 아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똑같이 낡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트럼프의 충격적인 말과 행동을 비판할 때, 그것은 옛날의 미국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들은 삼촌, 아버지, 할아버지 시대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플레이보이>의 창립자인 휴 헤프너가 여성을 물건 취급 하면서 큰돈을 벌었던 시대에 성년이 됐다. 지금도 ‘캐스팅 카우치’(여배우들이 제작자에게 성관계를 대가로 배역을 얻어내는 것)라는 말은 남성 상사들이 여성 부하직원에게 요구하는 부적절한 것에 대한 상징이 됐다. 트럼프의 친구 중 한명인 로저 에일스 전 <폭스 뉴스> 회장의 성추행 논란이 보여주듯이, 미국은 <플레이보이> 시대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 확실하다.

많은 미국 남성들의 행동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더 이상 그들의 행동을 못 본 척하지 않는다. 장애를 가진 기자에 대한 조롱이나 멕시코인들에 대한 경멸 등 트럼프의 다른 모욕적인 말과 행동들도 한때는 미국에서 용인될 수 있는 것이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얘기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트럼프는 유권자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그는 심지어 자기가 속한 정당의 지도자들도 모욕한다.

미국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11월8일, 미국인들은 트럼프 출마가 다양성을 불편해하던 시기에 대한 잠시의 과거 회상이었음을 깨닫고 정신을 차릴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화살이 오직 한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믿는 것은 실수다. 나치가 독일에서 권력을 쥐기 직전에도, 독일은 역사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표현의 자유와 관용의 시기를 누리고 있었다.

트럼프는 1950년대의 미국, 즉 여성해방과 동성결혼, 트랜스젠더 운동 이전의 시대로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상당히 많은 유권자들을 대표한다. 그들은 트럼프의 선거 유세로 동력을 공급받아왔다.

미국은 지금 시점에서 어느 쪽으로든 기울 수 있다. 진보적인 방향으로 몇 발짝 더 나아갈 수도, 아니면 ‘트럼프의 미국’으로 퇴행할 수도 있다. 미국만의 얘기라면, 나는 전진한다는 쪽에 걸고 싶다. 그러나 트럼프만이 아니다.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콜롬비아의 평화협정 거부,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선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권력 공고화 등, 이 모든 것은 반동의 징후들이다.

트럼프는 정말 형편없는 정치인이다. 내 삼촌처럼 트럼프는 과거 속의 인물이다. 그러나 때때로 과거는 우리를 단순히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지배하기 위해 되돌아온다. 뚜렷한 결점이 없는, 그러면서도 트럼프의 세계관을 가진 누군가가 다음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면 우리에게 이번처럼 행운이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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