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팀장 사업 성공을 확신한 벤처기업가는 검사 친구에게 회사 주식을 갖게 해주고 싶었다. 친구는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자신은 ‘힘센’ 주주를 갖게 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동고동락한 회사 동료들한테도 주지 않은 비상장주식을 회삿돈을 빌려줘가며 넘겼다. 그런데 검사 친구는 어찌된 일인지 주식대금을 갚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갚기는커녕 가족여행 경비와 회사 리스 차량까지 요구했다. 설상가상으로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뒤, ‘왜 뇌물이라고 검찰에서 진술했냐’며 오히려 자신을 탓하고 있다. 친구에게 분명 호의를 베풀었건만 돌아오는 건 원망뿐인 황당한 처지에 빠진 것이다. 진경준 전 검사장(구속)에게 넥슨 주식 등을 뇌물로 준 혐의로 함께 기소된 김정주 넥슨 창업주 얘기다. 지난 11일과 20일 열린 진경준씨의 공판은 김정주씨의 이런 처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틀 동안 증인으로 나선 김씨는 친구의 죄를 낱낱이 까발리려는 검사와 이를 방어하려는 변호인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더욱이 법정에는 하늘색 수의를 입은 친구뿐 아니라 그의 어머니와 아내도 나와 있었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심정일 그들이었다. 김씨는 검사의 추궁과 변호인의 반대신문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참다못해 재판장이 ‘우정의 선물’인지 ‘뇌물’인지 확실하게 답하라고 채근했다. “그때 ‘친구야, 그건 안 돼!’라고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한 게 뼈저리게 후회됩니다.” 김씨는 목이 메었다. 그는 법정을 나서다 마주친 친구의 어머니를 끌어안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친구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김씨의 증언을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들의 ‘30년 우정’이 하루아침에 산산조각나 입은 마음의 상처가 고스란히 느껴진 탓도 있었다. 하지만 김씨와 진씨가 눈앞의 고통에만 매몰돼 다른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이들은 지난 3월 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진씨의 재산을 공개한 이후부터 검찰 수사가 시작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말맞추기를 시도했다. 김씨는 “진씨가 재산이 너무 크게 발표돼 이목을 끌 것 같다고 걱정했다. 내게 ‘먼저 돈을 제공한 것으로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회사 차도 그냥 사용하라고 줬다고 말해달라는 취지로 부탁했다”고 증언했다. 이뿐만 아니다. 그는 친구의 재산 형성 과정을 조사하는 공직자윤리위원회에 거짓 소명서까지 냈다. ‘빗나간 우정’을 위해 정당한 공무집행 방해도 서슴지 않은 것이다. 성공한 벤처기업가와 잘나가는 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사회적 책임은 사적인 이익 앞에 뒷전으로 밀렸다. 김씨는 법정에서 진씨와의 우정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언젠가 진씨가 풀려나면 그의 바람대로 30년 우정은 회복될지 모른다. 김씨의 어마어마한 재산이 큰 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씨의 ‘타락한 기업인’ 이미지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그동안 사재를 출연해 이런저런 공익 활동을 한 공로는 진씨 사건으로 빛이 바랬다. 그는 지금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로 별도의 검찰 수사도 받고 있다. 김씨와 진씨가 그 ‘좋은 머리’를 공익을 위해 썼다면 어땠을까.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재산을 늘리는 궁리만 말고 사회적 이익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면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들이 재판 이후 몸과 마음이 자유로운 상태가 되면 공익 활동에 투신하기를 바란다. 법정에서 흘린 그들의 눈물이 분명 재평가될 것이다.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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