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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세현 칼럼] 북한인권결의안 논란 유감

등록 2016-10-30 18:06수정 2016-10-30 19:34

정부나 인권단체들이 진정으로 북한인권 상황을 개선하고 싶으면 유엔 결의안에 무조건 찬성하고 대북 삐라 살포나 지원할 게 아니다. 북한 주민들이 ‘등 다습고 배부르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 개방개혁으로 경제가 좋아지면서 인권 상황도 개선돼 나가는 중국의 선례를 볼 때, 북한의 개방개혁을 돕는 것이 방법일 수 있다.
정세현
평화협력원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10월초 출간된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회고록 중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관련 내용이 보름 남짓 언론을 뜨겁게 달구더니 최순실 사건이 터지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내년 하반기 대선 열기가 고조되면 북한인권 문제는 유엔 일정과 맞물리면서 다시 정치적 공방거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 2012년 대선 때 엔엘엘(NLL) 문제로 재미를 본 쪽이 판세가 불리해지면 전가의 보도로 여기는 종북몰이에 유혹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유관부처 관계자들에 따르면, 2007년 11월15일 열린 안보정책조정회의 안건은 ‘2007년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정부 입장’이었다. 찬성과 기권을 둘러싼 논의가 팽팽했지만 청와대 안보실장이 다수결 원칙에 따라 기권으로 결론을 냈다. 그러나 회의 결과에 대한 외교부 장관의 불만이 크다는 보고를 받은 대통령이 16일 외교부 장관과 통일부 장관을 관저로 불러 전날의 결론(기권)을 정부 방침으로 직접 확정했다. 18일 저녁, 회의가 또 열렸다. 16일 대통령의 최종 결정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회의에서 자기 주장이 관철되지 않았을 때 불만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결정이 되고 나면 그걸로 끝내야 한다. 회의 결과에 불복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회의를 두세번 더 연 청와대도 이상한 일을 한 거다. ‘일사부재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이 정치적으로 이용돼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9년 전에 끝난 문제를 요즘 주목받는 정치인과 관련지어 주관적으로(회고록이란 게 원래 그렇지만) 당시 상황을 서술하여 정치적 논란을 야기한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회고록이 나오자 보수진영은 기다렸다는 듯이 종북몰이를 시작했다. 유관부처의 본업인 북한동향 보고마저 ‘내통’, ‘북한 결재’라고 왜곡했다. 외교관들이 상대국의 동향을 본부에 보고하듯이, 대북 관련 공무원들도 수시로 북한동향을 상부에 보고한다. 더구나 2007년 10~11월은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남북총리회담도 열리는 등 남북 간 접촉·교류·대화가 빈번했던 시기다. 그런 상황에서 수집·정리된 북한동향 보고를 ‘내통’, ‘북한 결재’라고 공격하면 어쩌자는 것인가? 보수진영은 앞으로, 혹시 집권하더라도, 남북대화도 안 하고 북한동향 파악도 안 하면서 정치할 것인가?

이번 일을 계기로, 유엔 결의안이 북한인권 상황 개선에 과연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짚어 볼 필요가 있다. 2007년에는 유엔 결의안에 기권했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2008년부터는 찬성으로 일관했다. 북한 지도부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는 데도 찬성했고 서울에 유엔 북한인권사무소까지 세웠다. 이렇게 8년 동안 북한을 압박했지만 북한인권은 여전히 열악한 상태이고 개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유엔 결의가 아무 소용 없었다는 얘기다. 왜 그런가. 이유는 간단하다. 국제적 압박만으로는 인권후진국의 인권 상황을 개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권이 개선될 수 있는 대내적 여건이 구비되어야 비로소 인권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는 건 우리나라 인권발달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60~80년대 우리나라의 인권 상황은 열악했고 국제사회의 인권 압박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당시 군사정권은 그런 국제사회의 요구나 압박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먹고살기 바쁜 국민들의 인권의식이 보편화되지 않은 탓에 밑으로부터 인권 개선 요구도 제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화의 결과로 80년대 후반부터 먹고살 만해지고 민주화도 되면서 밑으로부터 치고 올라오는 인권 개선 요구를 정권이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쉬운 말로 ‘등 다습고 배불러야’ 인권의식도 싹트는 법이다. ‘등 시리고 배고픈’ 사람이 더 많은 북한 땅에서 인권 문제는 아직 가슴에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정부나 인권단체들이 진정으로 북한인권 상황을 개선시키고 싶으면 유엔 결의안에 무조건 찬성하고 대북 삐라 살포나 지원할 게 아니다. 북한 주민들이 ‘등 다습고 배부르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 개방개혁으로 경제가 좋아지면서 인권 상황도 개선돼 나가는 중국의 선례를 볼 때, 북한의 개방개혁을 돕는 것이 방법일 수 있다. 규탄과 압박은 답이 아니다. 관계없는 먼 얘기 같지만, 그 과정에서 핵문제도 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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