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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세현 칼럼] 차기 정부, 남남갈등부터 치유해야

등록 2017-03-26 17:52수정 2017-03-26 19:10

정세현
평화협력원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탄핵반대파들은 사드 문제도 국가이익보다는 한-미 동맹 차원에서 유불리만 따지려 할 것이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조치는 ‘종북’으로 몰아붙일 것이다. 차기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남남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남북관계는 적대관계로 바뀌었고 외교·안보는 자국중심성을 잃고 헤맸다. 민주국가에서 비판과 견제가 나오는 게 당연한 일이건만 박근혜 정부는 그걸 ‘종북’으로 몰아붙였다. 외교·안보를 둘러싼 남남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었는데 탄핵 국면에서 결국 그 정점을 찍었다. 탄핵반대 집회에서 촛불집회를 ‘빨갱이’ ‘종북’이라고 비난하더니 마침내 ‘탄핵은 북한 지령’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탄핵 후에도 ‘촛불은 인민, 태극기는 국민’이라는 구호가 나왔다. 박근혜 정부가 외교·안보를 이전 보수정권들보다 훨씬 더 많이 국내정치 수단으로 쓰더니 결국 국민들을 남남갈등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떠난다.

따라서 5월9일 대선에서 선출되는 대통령은 득표율에 관계없이 ‘종북’이라고 공격받으면서 남남갈등의 역풍을 안고 외교·안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 같다. 탄핵반대파들은 사드 문제도 국가 이익보다는 한-미 동맹 차원에서 유불리만 따지려 할 것이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조치는 ‘종북’으로 몰아붙일 것이다. 남남갈등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면 외교·안보정책 추진 동력이 떨어지면서 정책 성과도 기대할 수 없다. 그 부작용과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다. 이 때문에 차기 정부는 국민들의 편익을 위해서, 정책의 원활한 추진 여건 마련 차원에서 출범 직후부터 남남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남남갈등이라는 말은 김대중 정부 때 처음 나온 것 같다. 김영삼 정부 때까지도 통일·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비판은 있었지만, 정책을 둘러싸고 찬반 진영 간 대결전선이 형성된 것 같은 말은 쓰이지 않았다. 그러면 남남갈등이라는 말은 왜 나왔는가. 이승만 정부 이래 김영삼 정부까지 대북정책은 기본적으로 대북 봉쇄(Containment) 정책이었다. 그래서 남북 민간 접촉과 왕래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는 남북 접촉·교류를 활성화시키는 정책을 추진했다. 북한을 봉쇄하는 정책에서 북한과 관계를 맺는 관여(Engagement) 정책으로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면서 이념적 혼란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겼다. 더구나 통일문제가 담론 차원에서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니까 대북 봉쇄를 전제로 한 분단체제 아래서 구축된 기득권이 무너질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자 그 기득권을 직간접적으로 누리던 사람들이 김대중 정부 대북정책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남북대화는 ‘끌려다니기’, 교류·협력은 ‘퍼주기’라고 공격했다. 정책의 이미지 훼손으로 그 정책의 동력을 죽임으로써 허물어져가는 기득권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후 남북 교류·협력이 일상화되자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과 저항은 더욱 거세졌다. 그 와중에 ‘남남갈등’이라는 말이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보수 정치인들이나 논객들은 남남갈등이 엄청난 것처럼 주장함으로써 오히려 남남갈등을 국내정치 문제화 시키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때도 분단체제 아래서 구축된 기득권은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에 정부 대북정책에 대한 비난과 공격은 계속됐고, 남남갈등의 잡음은 꺼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대북정책이 다시 봉쇄 쪽으로 회귀했기 때문에 분단체제 기득권이 침해받을 일이 없었다. 따라서 남남갈등이라는 말도 별로 쓰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현직 대통령 탄핵으로 보수집권이 어려울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자 ‘빨갱이’ ‘친북’ 등의 단어가 등장하면서 분단 기득권층의 ‘종북몰이’가 다시 시작됐다.

이번 대통령 탄핵을 ‘박정희 체제의 역사적 종언’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박근혜 정부 출범으로 박정희 체제 이래 보수세력의 ‘기댈 언덕’이었던 분단체제가 이명박 정부 때보다도 훨씬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대통령이 탄핵됨으로써 박정희 시대에 구축된 분단체제도 이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곧장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다. 박정희-박근혜의 그림자에 매달려 분단체제 기득권을 되살릴 동력을 확보하려는 세력들이 남남갈등의 불길을 다시 지피려 할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를 그 불씨로 삼을 것이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경각심을 가지고 출범 초부터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서 국민들을 상대로 성의 있는 설득과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만 남남갈등의 불길이 꺼지고 마침내 분단체제도 막을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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