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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선희의 밑줄 긋기] 재벌들이 피해자라고?

등록 2016-11-03 18:23수정 2016-11-03 21:20

안선희
사회정책팀장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재벌기업들로부터 800억원을 받아낸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수사가 한창이다. 수사 대상이 된 기업들은 “우리도 피해자”라고 우는소리를 한다. 소가 웃을 일이다.

박 대통령은 불평등 해소와 복지 확대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응축돼 있는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건 덕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단어가 박 대통령의 연설과 발언에서 사라지는 데는 취임 뒤 1년도 걸리지 않았다. 대신 ‘경제활성화’와 ‘규제개혁’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2014년 3월10일 그 유명한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이자 암덩어리” 발언이 나오고, 그달 20일에는 규제개혁장관회의 겸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를 열어 7시간 생중계까지 했다.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 불필요한 규제는 손을 봐야 하지만, 많은 규제는 전체 사회의 안전, 환경, 기본권 등을 지키기 위해 기업들이 최소한 지켜야 할 ‘규칙’이다.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터졌고, 노후선박 연령 연장 등 무분별한 규제완화가 원인 중 하나로 꼽혔지만 박근혜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번 미르 사건의 모금창구이기도 한 전경련은 대통령의 ‘암덩어리’ 발언에 고무돼 628개, 821쪽에 걸친 ‘규제개혁 개선과제 종합건의’를 4~6월 정부에 제출했다. 같은해 11월에는 153개의 ‘규제기요틴(단두대) 과제’를 냈고, 이를 받아 정부는 12월28일 규제기요틴 민관합동회의를 연다.

박근혜 정부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쉬운 해고를 부추길 것”이라는 비판에도 강력 추진한 ‘노동개혁’ 정책은 모두 전경련의 규제기요틴 과제에 들어 있다. 파견 가능 업종 확대,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저성과자 해고 기준 도입,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등이 그것이다.

“법인세율을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 이전 수준까지만 되돌리자”는 야당의 제안에도 정부는 일관되게 법인세 인상 반대를 고수했다. 2014년 하반기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가 “가계소득을 높이겠다”며 사내유보금 과세(=기업소득환류세제)를 도입했을 때 대기업들은 살짝 긴장했지만 곧 별게 아닌 걸로 드러났다. 4년 동안 대다수 국민의 삶은 더 팍팍해졌고 ‘헬조선’ ‘금수저’론이 온 사회를 휩쓸고 있다.

재벌기업들은 박근혜 대통령이든 최순실 대통령이든 큰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과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들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해준다면 누가 대통령이든 무슨 상관이랴. 다소 귀찮지만 ‘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그깟’ 800억 정도는 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경련 회장을 지낸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정부가 주도한 경제정책은 대부분 최종 결정 전에 대기업과 협상해 결정됐다”고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해마다 2억원씩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말도 했다.(김윤태 <재벌과 권력>) 최순실씨의 아버지 최태민씨는 “영애(박근혜)께서 필요로 하는 일”이라며 기업들에게 돈을 받아냈다고 한다. 박 대통령도 최씨도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한 것이다.

20대의 박근혜 ‘영애’가 최씨와 새마음봉사단 놀이를 하고 돌아다닐 때, 더 어린 ‘여공’들은 휴일 없이 하루 12시간씩 일하며 한달 2만원 정도를 벌었다. 최씨의 변호인인 이경재씨가 “아직 풍파를 견딜 나이가 아니”라고 걱정했던 최씨의 딸 정유라씨가 ‘공주 승마’를 하고 있을 때, 그보다 한살 어린 김군은 월급 144만원의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결국 구의역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겉모습이 바뀌어도 끈질기게 지속되는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면, 대통령이 하야해도 변하는 것은 없을지 모른다.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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