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여행 대표 분노와 불안의 시대에 권장할 만한 여행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일상의 분노와 불안을 푸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몇 해 전부터 스페인 산티아고 800여㎞ 한달 도보여행길에는 한국인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심지어 눈보라 치는 겨울철에도 가끔씩 산티아고 길을 걷는 한국인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숙소를 여는 곳이 생겨났다고 한다. 나와 함께 산티아고를 걸었던 벗은 스트레스가 많은 한국인들에게 유일한 치유는 도보여행이기 때문에 머나먼 스페인까지 와서 걷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분노를 삭이고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먼동이 틀 무렵 배낭 하나 짊어지고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길을 걷는 자유로움. 산길 숲과 들판을 묵묵히 걸으면서 시선과 마음은 자연으로 간다. 산티아고 길이 좋은 이유는 걸어도 걸어도 또 길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몇날 며칠을 발이 부르트도록 걷다 보면 아픈 고통 때문에 다른 번잡한 생각이 사라지고 길 위에 마음이 온전해진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노란 표지의 길에 들어선다. 그러나 길 위의 아픔은 별반 다르지 않다. 무거운 배낭 어깨끈 따라 파이는 어깨며, 몸무게로 무릎은 꺾이고 더러는 발톱이 빠지기도 한다. 몇 시간 걷다 보면 입술이 바짝 마르고 두 시간마다 나타나는 마을카페에서 맥주 한잔으로 갈증을 푼다. 산티아고 길의 가장 큰 즐거움은 함께 길을 걷는 여행자들을 만날 때이다. 나라와 직업은 달라도 여행자의 행색은 점차 같아진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부엔 카미노”라 인사한다. 좋은 여행 하시라는 의미다. 얼마 전에는 피스보트를 탔다. 피스보트는 1983년 일본 우익단체들이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자 일본 정부의 잘못된 역사관을 바로잡고자 하는 일본 대학생들이 만든 국제평화 단체다. 당시 대학생들로서는 무모한 생각일 수 있는데 크루즈 세계여행을 시도한 것이다. 무모한 도전, 그러나 지난 33년간 약 8만여명이 세계 크루즈여행을 했다. 마침 피스보트를 탈 기회가 있어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아이슬란드까지 짧은 크루즈여행을 했다. 출렁거리는 바다 위에서 며칠 동안 지낸다는 것이 못내 불안했다. 취업, 실업, 원전, 국내외 정세 등 온통 불안한 사회를 뒤로하고 깊은 바다 위에 덩그러니 있자니 더욱 불안했다. 시차 때문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마침 갖고 간 책 <상실의 시대>를 읽으며 잠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 일찍 갑판을 나가 보니 새벽안개에 희뿌연 조명등 아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양손에 스틱을 쥐고 줄지어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노르딕 워킹을 하는 사람들이다. 핀란드 스키 선수들이 여름에도 몸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개발한 운동법으로 스틱을 쥐고 걷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그냥 발로만 걷는 것보다 스틱을 사용하기 때문에 상·하체 모두를 움직여서 운동하기 때문에 운동량이 훨씬 많다고 한다. 100여일간 세계일주를 하는 피스보트 여행자들은 매일 이른 아침부터 노르딕 워킹으로 건강을 유지한다. 나도 따라 걷다 보니 불안이 가시는 듯했다. 분노와 불안의 시대, 요즘 많은 사람이 광화문을 찾는다. 걸으면서 목청 높여 구호도 외치니 건강에 좋기는 하지만 약간 단조롭다는 것이 흠이다. 노르딕 워킹의 스틱 대신 흥을 돋울 만한 악기 등을 들고 나오면 좋겠다 싶다. 건강한 걷기는 일주일에 5일, 하루 최소 30분은 걷는 것이 좋다고 한다. 성인병 예방에도 좋은 광화문 도보여행, 주말에 집안에 웅크려 있기보다 걷기여행으로 불안과 분노를 푸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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