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싱클레어> 편집장, 뮤지션 가끔 딸아이를 보고 있자면 아빠를 어떻게 기억하며 자랄까 궁금해진다. 기다려보면 알 수 있겠지 하면서도 혼자서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성격 탓일까, 그려지는 모습은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이다. 잡지를 만들며, 밴드를 하며 살아온 아빠라는 건 나조차 낯설기는 하니까. 최근에 나와 연배가 비슷한 뮤지션과 공연을 같이 하게 되었는데, 일찍 결혼하신 분이라 딸이 벌써 10대 후반이었다. 빵과 쿠키를 만드는 일을 배우고 있다는데 아빠 공연에도 같이 와 관객석에 앉아 있기도 하고 정리를 기다렸다 뒤풀이를 함께 하기도 했다. 그렇게 몇 번 마주친 게 인연이 되어 내 작업실에서 열린 벼룩시장에 빵과 쿠키를 팔러 왔다. 그녀는 내가 미래에 만나게 될 ‘인디뮤지션의 딸’인 셈이었다. 뒤풀이 자리에서 피자를 나눠 먹으며 꼭 묻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아빠가 뮤지션이라는 게 자라면서 어땠어요?” 역시 십대. “다 먹고 얘기해 드릴게요.” 템포를 맞춰야지, 하고 기다렸다.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보시는 거예요?” 하길래 그렇다고 했다. 몇 번 마주칠 때마다 물어보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고. 답은 이랬다. “중학생이 되기 전에는 아빠가 뭐 하시는지 몰랐어요. 대기실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기도 하고 공연에도 많이 따라갔지만 그냥 놀러 간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최근에야 정확히 아빠가 뮤지션이구나 알게 된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떻게 아빠가 이런 일을 하면서 가족들을 먹여살렸지 놀라워요.” 내 딸아이도 꽤 많은 공연을 같이 다니고 있다. 생후 2개월부터 공연장에 있었으니 벌써 내 노래는 지겹게 들었는데 꼭 따라 춤추는 노래가 있고 딴짓하는 노래도 있다. “아빠가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니까 다들 나도 기타를 잘 치고 노래도 잘한다고 생각해서 아무 데서나 시키고 하니까 그건 싫었어요. 그런데 음악 하는 이모, 삼촌들이 많고 몇 명은 친구들도 아는 사람들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결론은, 무척 좋아요! 아빠가 뮤지션인 게. 어려서는 음악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저는 이제야 기타도 치고 피아노도 연습하고, 얼마 전에는 친구들과 공연도 했어요.” 그렇구나. 일단 주변에 아이에게 노래는 시키지 말라고 해야겠다. 집으로 가는 길, 그래 생각했던 것보다 좋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뭐, 사실 이제 와서 다른 방법도 없으니까. 요즘 화제인 딸 이야기가 있다. 엄마가 역술인, 이모는 대통령이다. 자신의 꿈(?)을 위해 이모, 삼촌, 큰 기업들이 뛰어준다. 다들 텔레비전에 나오고 누구나 아는 큰 회사다. 혹시나 1등을 못할까 혼자 출전할 수 있는 경기도 만들어준다. 당연히 금메달 확보! 학교에서는 교수님들도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다. 비선실세의 딸. 홍대 앞에 살다 시골로 간 인디뮤지션의 딸은 지난 주말에도 무대로 뛰어나와 신나게 엉덩이를 흔들다 의연하게 끌려나왔다. 나는 모르는 아이인 척 너그러운 뮤지션의 표정을 지었지만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렸다. “아빠랑 똑같이 생겼어!” 그냥 내가 태어난 나라가 인디뮤지션의 딸이건 비선실세의 딸이건 그냥 같이 모여 우리 아빠 좋아요!를 외칠 수 있는 나라라면 얼마나 좋을까. 꿈같은 이야기겠지만. #그런데_경주핵발전소는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