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팀장 검찰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중간수사결과 발표는 멋진 반전이었다. 사건 초기 ‘늑장 수사’로 비난받던 검찰이 현직 대통령을 주범으로 묘사한 공소장을 써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발표도 극적이었다. 지난 20일 오전 11시 특별수사본부장을 맡은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의 공식 발표만 해도 영 싱거웠다. 그는 최순실과 안종범, 정호성의 범죄만 쭉 나열한 뒤 말미에 “박 대통령은 이들과 상당 부분 공모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만 언급하고 퇴장했다. 최씨 등의 범죄행위에 박 대통령이 어떻게 관련됐는지 전혀 언급이 없었다. 발표장에선 최씨 등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의 공모관계가 적시돼 있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반전은 수사팀과의 일문일답에서 예고됐다. 노승권 1차장검사는 공모관계 적시 여부를 묻는 질문에 머뭇거리지 않고 “그렇다”고 답했다. 곧이어 법원이 공개한 공소장은 반전의 하이라이트였다.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박근혜는 헌법에 따른 국가원수 및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각종 재정, 경제 정책의 수립 및 시행을 최종 결정함과 아울러… 행정 각부의 장들에게 위임된 구체적 사항에 대해 직접적, 간접적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기업체들의 활동에 직무상 또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다.’ 공소장 서두의 ‘피고인들의 지위’에 나오는 박 대통령을 설명한 부분은 20년 전 전두환·노태우의 뇌물죄 판결문과 흡사하다. ‘피고인 전두환(노태우)은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헌법을 준수하고… 정부의 수반으로서 각종 재정, 경제 정책의 수립 및 시행을 최종 결정함과 아울러 소관 행정 각 부의 장들에게 위임된 사항에 직접 또는 간접적인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기업체들의 활동에 있어 직무상 또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음을 이용하여…’ 검찰은 박 대통령이 두 전직들처럼 청와대에서 재벌 총수를 만나 ‘삥 뜯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공소장에 적었다. 여전히 검찰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미르재단 등에 거액을 낸 재벌 총수를 뇌물 혐의로 기소하지 않은 것을 두고 ‘반쪽 수사’라고 폄하한다. 촛불 민심을 간파한 검찰 수뇌부가 재빨리 말을 갈아탔다는 비아냥도 있다. 하지만 검찰이 현직 대통령을 정조준해 수사를 진행하는 건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 검사들 가운데는 사표를 쓸 각오로 수사에 참여한 이들도 있다. 검찰총장이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을 향해 ‘대면조사를 꼭 해야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도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더욱이 상대는 권력 유지에 혈안이 돼 ‘막가파식’ 행태도 서슴지 않는 이들이 아닌가. 당장 내년 2월에 있을 검찰 인사 때 이영렬 본부장을 비롯한 수사 검사들이 무더기로 좌천될 것이라는 소문이 벌써부터 나돈다. 검찰의 생리를 잘 아는 황교안 총리 등이 보복 인사를 주도할 것이라는 소문이다. 이들의 노림수가 통하지 않게 하는 것은 이제 야당의 몫이다. 촛불 민심 속에서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야당을 대신해 검찰이 박 대통령에게 치명타를 가했으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이번 수사팀은 공익의 대변자인 검사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수사 결과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건 그동안 검찰이 제 할 일을 다하지 못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권력의 처절한 인사 보복을 너무 두려워한 탓인지도 모른다. 제 할 일을 하는 검찰의 뒤엔 항상 국민들이 있다. 이제는 권력의 횡포에 너무 쫄지 않았으면 한다.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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