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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봄을 찾기 / 김용진

등록 2016-12-09 16:59수정 2016-12-09 22:04

피터 김용진
월간 <싱클레어> 편집장, 뮤지션

봄을 찾기가 시작되었네/ 햇살처럼 따뜻한 것이 있을까/ 햇살보다 따뜻한 네가 있었지/ 보물 찾기가 시작되었네

이건 노래 가사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만든 ‘봄을 찾기’라는 노래의 후렴이다. 노래의 탄생은 이렇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내 작업장에서는 재작년 5월부터 세월호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음악가들, 글쓰는 사람들은 사회에 큰 변화가 있을 때면 무력감을 느낀다. 뭐라도 해야 할 텐데. 사실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기도 하고. 그렇게 자신이 오랫동안 하고 있는 직업의 무기력함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나는 이 사회에서 어떤 존재인가. 그냥 한 개인일 뿐일까. 이런 말이 가능하다면 이기적인 시민이라고 할까.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는 또 역시나 그런 무력감을 느꼈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한 달에 한 번 모여 작은 문화제를 열기로 했다. 때로는 10여명, 많을 때는 30여명이 모여 노래도 듣고, 글을 낭송하기도 하고, 유가족들과 대화도 나누고, 피자며 치킨도 나눠 먹고. 그렇게 만난 인연으로 노래 한 곡을 부탁받았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이었다. 덜컥 그러겠다고 하고 나서는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듯한 기분이었다. 사실 노래를 만드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평생 해 온 일이니까. 하지만 이건 경우가 달랐다. 그냥 내가 만들고 싶은 노래를 만들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쉬우면서 독특한 멜로디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런데 의외로 멜로디는 쉽게 만들어졌다. ‘욕심을 버리자. 이 노래는 304명이 함께 부른다. 아마도 그 이상의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부른다. 그렇다면 어떤 멜로디든 좋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쉬웠다.(때로는 나의 이런 터무니없는 낙관성이 놀랍다.) 그래서 누구나 칠 수 있는 쉬운 코드 3개를 가지고 화음을 구성했다. 되도록 화음에 변화를 주지 않고 이음새가 없는 나무처럼 단순히 만들었다. 그런데 역시 문제는 가사였다. 고민하는 사이 몇 주가 쉽게 가 버렸다. 도저히 어떤 말에 그 마음들을, 이야기들을 담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내가 근로장학생으로 청강 중인 스페인어 수업에서 갑자기 길이 열렸다. 그 수업에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어느 봄날 소풍을 다녀와서 아이들이 쓴 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한 아이가 소풍에서 했던 보물찾기가 혹시 봄을찾기가 아니냐 했다고. 그 뒤의 이야기도 내 마음을 끌었다. 햇볕 중에 봄볕이 가장 따뜻한 것 같아요 하며 볼을 햇살에 대고 있던 아이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이 후렴구를 썼다. 그리고 선생님께 이 내용을 가사로 써도 되겠냐 여쭤봤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물어보겠다고 하셨고 며칠 후에 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아이가 좋다고 했다고. 대신 언제 한번 와서 꼭 불러달라고 했단다. 가서 불러주지는 못했지만 녹음이 끝나고 나서 음원을 보내줬다.

같이가는 사람들도 손잡고 영차/ 기다리고 기다리던 햇살의 온기/ 같이가는 사람들도 칙칙폭폭 기차/ 꾸벅꾸벅 졸던 아이 찾았다

이 칼럼이 신문에 실리는 토요일 오후, 우리는 스물여섯번째 세월호문화제를 연다. 꾸벅꾸벅 졸던 아이들을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 햇살보다 따뜻한 네가 있었으니. 아무도 잊지 못하도록.

-봄을 찾기
피터 김용진 작사·작곡

봄을 찾기가 시작되었네
햇살처럼 따뜻한 것이 있을까
햇살보다 따뜻한 니가 있었지
봄을 찾기가 시작되었네

같이 가는 사람들도 손잡고 영차
기다리고 기다리던 햇살의 온기
같이 가는 사람들도 칙칙폭폭 기차
꾸벅꾸벅 졸던 아이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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