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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황혼에 떠나는 여행 / 나효우

등록 2016-12-30 17:11수정 2016-12-30 19:48

나효우
착한여행 대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한강철교를 지나는 차창 밖의 붉은 노을이 아름답다. 강물이 일렁이며 붉은 노을과 만나 물고기 은빛 지느러미처럼 반짝거린다. 해가 지고 어스름해질 때를 우리는 황혼이라 한다. 사람의 생애도 그렇고 나라의 운명이 한창인 고비를 지나 쇠퇴하는 것을 비유해서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여행의 시간에서는 황혼이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하루 또는 한 해를 마감하면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여가의 시간이며, 비로소 나만의 자유 공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래전 필리핀의 빈민지역에 있을 때 스승으로 모신 분이 있었다. 아시아 주민운동의 대부였던 데니스 머피는 가톨릭 예수회 소속 신부였는데 청년시절부터 가난한 이들과 부대끼며 살다가 얼마 전에 8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의 나이가 삶을 관조할 수 있는 50대 중반이었던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그와 여행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의 여행가방은 단출했다. 손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그 손가방 안에는 옷 몇 벌과 일간지에서 오려둔 십자말풀이 묶음과 수첩이 전부였다. 그는 어디를 가든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그는 자기만의 속도로 여행을 한다. 마을 입구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 오래 멈춰 서서 보기도 하고, 아낙네가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것을 보면 손을 내밀어 짐을 나누었다. 나보다 한 세대 나이 차이가 나는 그를 통해 나는 여행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사실 나 자신임을 그때 깨달았다.

미국의 ‘엘더호스텔’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노인평생교육기관이다. 이 기관은 ‘평생교육으로의 모험’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여행을 통해 평생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실버세대가 지적인 관심이 높다는 것에 맞춰서 흥미로운 주제를 선정하고 청년들의 유스호스텔과 같은 숙소에서 머물며 모험정신을 살려 현장탐방 여행을 하는 ‘로드스칼러’(Road Scholar), 20대 손자손녀와 함께 여행하는 ‘익스플로리타스’, 그리고 ‘봉사 학습’(Service Learning) 등 여행길에서 배우는 평생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무장애 여행’을 넘어서 ‘접근 가능한 관광’(Accessible tourism)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접근 가능한 관광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임산부, 유모차 아이들, 노년층 등 모든 사람의 이동과 보고 듣고 소통하는 등 모든 편리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관광이다. 유엔 세계관광기구에서는 ‘모든 이들에게 여행을’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돈이 없어도 이주민, 노인, 여성, 어린이들 모두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우리나라 통계청 자료를 보면 급격한 저출산, 고령화의 영향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3.2%이며, 2030년에는 24.5%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반면 노인 빈곤율이 48.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이며, 노인 자살 사망률은 오이시디 평균의 3배 수준에 이른다고 한다. 내 관심을 끄는 통계청의 발표는 실버세대가 가장 하고 싶은 여가활동은 여행이지만 현실은 텔레비전 시청으로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생 황혼기에 여행할 수 있는 기회와 권리를 국가가 제공할 때 사회는 더 풍부한 창의력과 지속가능한 생산력이 생긴다. 특히 세대 차이가 나는 사람들이 서로 존중과 배려를 하며 여행을 함께 한다면 그 여행의 깊이와 기쁨은 배가될 것이다. 새해에는 인생의 황혼을 맞이하는 분들이 더 자유롭게 여행하며 세상에 그들의 지혜를 나눠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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