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박영신. 2016년을 보내고 2017년을 맞으면서 전국에 울려퍼진 새해 소망이다. 그런데 정작 새해 첫날 얼굴을 마주한 사람은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떠나보낸 그 사람이었다. 이제는 마음속에서 지워버린 그 사람의 모습을 새해 첫날부터 지켜보아야 하는 상황은 역설적이다.
그러나 이제는 새삼스러운 분노도 실망도 느껴지지 않는다. 분노와 실망에도 체감의 법칙이 작용하는 모양이다. 그의 변함없는 뻔뻔함에 감각이 무뎌진 탓인지 분노 대신에 경멸이, 실망 대신에 무시의 감정만 밀려온다. 박근혜 대통령의 터무니없는 넋두리와 변명은 자기위안과 자기기만일 뿐이다. 진실을 외면한 채 ‘나는 죄가 없어’ ‘나는 억울해’라고 평생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가기 위한 예행연습이다. 그의 장광설이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도 없다. 송박영신의 덕담은 여전히 유효하다.
송박영신은 박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낡은 체제와 결별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자는 염원이요 다짐이다. 그 첫 관문은 ‘좋은 새 대통령’을 뽑는 일로 좁혀진다. 정권교체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지만 해결의 출발점인 것은 분명하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이 1월에 내려지면 3월 대선이, 3월에 내려지면 5월 대선이 치러진다. 이른바 매화대선, 벚꽃대선이다. 대선 결과 천지에 봄꽃이 만개할지, 아니면 낙화의 탄식이 울려 퍼질지는 알 수 없다. 아직은 눈 내리고 광야에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다.
‘추상’의 세계에 머무는 송박영신의 ‘신’을 특정 인물이라는 ‘구상’의 단어로 치환해보면 나라의 앞날은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송박영문인가 송박영안인가? 아니면 송박영이, 송박영박, 송박영안일까? 만에 하나 송박영반으로 끝날 가능성은 없는가.
광장의 함성이 구체제를 무너뜨릴 수는 있지만 새로운 체제를 건설하지는 못한다는 명제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시민혁명이 열매를 맺지 못한 채 허무하게 증발해버린 뼈아픈 경험도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하지만 촛불의 새로운 역사를 써온 우리의 저력은 난공불락의 그 명제마저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믿는다.
촛불 이후의 촛불이 지향해야 할 일체적 과제는 자명하다. 평생 촛불과 대척점에서 살아온 사람, 국가 변혁의 꿈과 전략도 없는 사람이 정치공학으로 대통령에 당선돼 촛불의 성과를 무위로 돌리는 일을 막는 일이다. 절대 녹록지 않지만, 꼭 완수해야 할 과제다.
촛불은 정치인의 선의와 양식을 믿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시민이 정치 엘리트들의 종속변수에 머무는 한 난공불락의 명제는 영원히 난공불락으로 남는다. 박 대통령 탄핵이란 일치된 목소리를 내던 촛불이 개별 후보들의 지지 촛불로 바뀌는 순간 실패는 재연된다. 이미 그 조짐은 엿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면 실패의 진원지는 ‘주관적 득표 예측의 오류’였다. 4자 필승론이니 3자 필승론이니 하는 희망 섞인 예측이 비극의 씨앗이었다. 촛불이 막아야 할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그런 예측이 물론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라의 앞날을 확률 게임에 의지하기에는 상황이 너무나 절박하다. ‘이기고 싸우는 선거’가 될 조건도 충분히 갖춰졌다. 이를 위해서는 ‘나 홀로 고집’에 사로잡힌 후보, 헌신과 희생의 모범을 보이지 않는 후보들을 촛불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배격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야권의 원심력을 구심력으로 전환해야 한다.
비슷한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는 세력 간의 권력분점을 추동하는 일 역시 촛불의 주 테마가 돼야 한다. 지금 정치권 한쪽에서 강력히 추진하는 개헌의 요체도 결국은 권력의 나눔이다. 그렇다면 개헌 전이라도 야권 전체가 역할과 과제를 나누지 못할 이유가 없다. 독식이 아니라 분점, 협력과 연대를 통한 국가 개조는 개혁진보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의 거스를 수 없는 과제다.
촛불은 이제 탄핵의 끝을 지나 그 너머를 응시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집단지성의 힘이 제대로 작동하면 여태껏 생각하지 못했던 참신하고 발랄한 방법도 많이 있을 것이다. 만민공동회 방식의 후보 검증 절차, 야권 지지 유권자들만을 상대로 하는 국민 직접투표 등 시민사회 한쪽에서는 여러 아이디어도 분출하기 시작했다. 광장의 함성이 구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체제까지 건설하는 미증유의 역사를 쓰는 것, 이것이 2017년의 과제다.
논설위원
kj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