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정치인들이 내는 신년 휘호의 효시는 이승만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다. 서예를 즐겼던 이 대통령은 매년 1월1일에 직접 붓글씨로 신년 휘호를 써서 국민에게 제시했다고 신경식 헌정회장은 기억한다. 국가기록원엔 이 대통령이 1957년 설날에 쓴 ‘국부병강 영세자유’(國富兵强 永世自由)란 휘호가 남아 있다.
신년 휘호를 정치적으로 가장 잘 활용한 이는 박정희 대통령이다. 1962년 혁명완수, 65년 근면검소, 72년 유비무환, 73년 국력배양, 75년 국론통일, 79년 총화전진 등을 내놓았다. 굳이 한자를 병기할 필요가 없는 실용적인 구호 형식이다. 박 대통령의 마지막 신년 휘호 ‘총화전진’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술품 시장에서 구입해 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박정희와 맞섰던 김영삼·김대중 두 야당 정치인도 신년 휘호를 즐겨 썼다. 김영삼 대통령은 야당 시절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자주 썼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1998년 1월1일 신년 휘호로 ‘경세제민’(經世濟民)을 내놓았다. ‘세상을 다스려 백성을 고난에서 구한다’는 뜻으로, 구제금융(IMF) 사태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올해 대선주자로 꼽히는 정치인들은 붓글씨로 신년 휘호를 쓰기보다는 포부를 담은 ‘사자성어’를 제시했다. 이젠 붓글씨 쓰는 정치인이 거의 없는 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재조산하’(再造山下·나라를 다시 세운다)를, 이재명 성남시장은 ‘사불범정’(邪不犯正·바르지 못한 것이 바름을 범하지 못한다)을, 안철수 전 대표는 ‘마부위침’(磨斧爲針·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을, 박원순 서울시장은 ‘혁고정신’(革故鼎新·옛것을 고치고 새로운 것을 이룬다)을, 유승민 의원은 ‘불파불립’(不破不立·깨지 않으면 일어설 수 없다)을 국민에게 내놓았다. 곧 있을 대선에서 누구의 뜻을 취할지는 국민의 몫이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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