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싱클레어> 편집장, 뮤지션 18년 후,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새해 첫날에. 18년 전 우리는 잡지를 창간했다. 그때는 내가 18년차 편집장으로 남아 있을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알았다면 과연 시작했을까. 이렇게 여전히 밴드의 멤버가 되어 있을 줄, 두 딸의 아빠가 되어 있을 줄, 시골에 살게 될 줄 몰랐다. 어쨌든 <월간미술> 편집장보다 오래 편집장을 하며 잡지를 만들고, 여전히 음악을 하며 살고 있다. 내게도 꽤 오랜 시간이라 느껴지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지. 오래 지속한 독립잡지의 대명사로 <싱클레어>를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나는 이곳저곳에 불려다니며 어떻게 그렇게 ‘오래 지속할 수 있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요즘은 한권 한권 만들기가 어렵다. 다들 재정적인 문제겠거니 하겠지만 <싱클레어>는 전체 비용이 크게 들지 않는 독립출판물 형태이고 편집부는 각자 알아서 먹고산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초반 한두 해처럼 인쇄비며 운영비 때문에 하루하루가 걱정인 시절은 아니다. 문제는 항상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편집부가 한 명씩 돌아가면서 어떤 위기의 조짐을 느꼈다. 4년차 때쯤인가 보다. 1. 세상에는 멋진 책이 많은데 그중에 한 권씩 사서 읽으면 되지 우리가 꼭 인쇄물을 만들어야 할까. 우리의 작업이 환경파괴에 일조를 하는 건 아닌가. 하지만 결국 작업물은 세상에 던져진 외침들에 대한 나의 답장이다. 내 답장은 나만이 쓸 수 있으니 지금 쓰는 글들은 몇 명이 읽더라도 고유하게 존재해야 하는 게 아닌가. 몇 해가 지나고, 질문은 바뀌었다. 2.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는데 두 달에 한 번 나오는 잡지라니, 너무 느린 게 아닐까. 주간지면 모를까 더 이상 이런 속도의 인쇄물은 의미없지 않을까. 영향력도 미미하고. 그래도 생각하면 두 달에 한 번씩 내는 것은 우리가 찾은 우리만의 속도다. 그 속도 덕분에 계속 만들 수 있었는데 우리가 찾은 적절한 속도를 남의 속도에 억지로 맞출 필요가 있을까. 또 이렇게 몇 해가 지났다. 3. 모두 이북(E-book)을 이야기하는데 우리도 모바일 기반으로 바꾸면 어떨까. 이건 실제로 시도를 해보았다. 창간호부터 50호까지 모아서 이북으로 발매했다. 좋은 시도였으나 큰 변화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 그래도 종이의 느낌이 좋지 않은가. 4. 어릴 때 잘못된 선택을 했는데 그걸 모르고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여기서 벗어나면 뭔가 다른 인생이 열리지 않을까. 그런데 인생이 열린다는 건 뭘까. 생각해보면 주변에 그런 사람을 본 적이 별로 없다.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폐간(을 권유하는 나만의) 질문’이 계속 나타날 듯싶다. 하지만 그때그때 다른 이유로 지속하겠고, 그 이유를 찾지 못할 때 마지막 편집장의 말 ‘싱클레어가 싱클레어에게’를 쓰게 되겠지. 그래도 18년 후 여전히 내가 <싱클레어> 편집장을 하고 있다면. 나는 <싱클레어>에 매호 글 한 편쯤 기고하는 오랜 독자가 되어, 밴드 공연을 할 때는 떼창을 가능하게 해줄 히트곡 한 곡 정도 가진, 두 딸이 양쪽에서 같이 팔짱끼자며 잡아당기는 웃기는 아빠가 되어 있고. 기본소득 매달 입금되고, 좀 인간다운 정치인들이 공영방송에도 보이고, 무엇보다 우뚝 서 있는 경주 핵발전소에 폐쇄 간판이 서 있는 풍경을 상상해본다. 또 긴 시간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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